넷플릭스 다큐멘터리와 실화 범죄 드라마 시리즈로 재조명된 ‘메넨데즈 형제(Menendez Brothers) 사건’의 형제들이 결국 법원으로부터 형량 감형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 13일(미국 현지시간) AP통신, NBC 등은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 판사가 부모 살해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35년간 복역중인 메덴네즈 형제의 형량을 '50년 이상 종신형'으로 감형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판결로 두 형제는 가석방 심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 향후 실제 가석방 여부는 캘리포니아주 가석방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이 사건은 199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며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조명되어온 대표적인 범죄 사건이다.

형제의 재판과 판결을 재검토한 다큐멘터리부터, 범행의 전후 정황을 심층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등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였고, 그만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논쟁을 불러온 사건이기도 하다.

콘텐츠가 불러낸 사건의 새로운 증거들

2015년 방송된 바바라 월터스(Barbara Jill Walters)의 TV 스페셜(Barbara Walters Presents: American Scandals – Menendez Brothers: The Bad Sons)에서, 에릭 메넨데스가 사촌 앤디 카노(Andy Cano)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었다. 이 편지에는 아버지 호세 메넨데스로부터의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해당 편지는 2023년에 이르러 공식 법적 증거로 제출되었다.

이후 2023년 피콕(Peacock)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Menendez + Menudo: Boys Betrayed>에서 라틴계 보이그룹 메누도의 전 멤버 로이 로셀로가 본인의 10대 시절, 당시 레코드사 임원이었던 호세 메넨데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 같은 증언들이 공개되자, 메넨데스 형제 측 변호인단은 2023년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공식 제출했고, 2024년 9월 조지 개스콘(George Gascón) LA 카운티 검사장은 사건을 재검토하겠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시대가 바뀌며,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다

2021년, 미국 방송사 ABC는 다큐멘터리 <20/20 - Inside the Menendez Movement>를 통해 메넨데스 형제 사건이 미국 10대들을 중심으로 SNS ‘틱톡(TikTok)’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현상을 다뤘다.

199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은 약 30년이 지난 2020년대에 들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기에는 메넨데스 형제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재판 영상이 외모 중심으로 소비되며 유행처럼 확산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틱톡 내 알고리즘에 의해 형제의 재판 증언 영상이 사용자들에게 추천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투(MeToo) 운동 이후 성적 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와 달리 형제의 주장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Justice for the Menendez Brothers(메넨데스 형제에게 정의를)’와 같은 해시태그 캠페인이 확산되며, 사건을 다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형성됐다.

The Menendez brothers are back in the zeitgeist thanks to teens on TikTok: Reporter’s Notebook

They’d greet me and tell me how old they were, before getting into an evidence-based narrative about why they believed the Menendez Brothers’ sentencing was unjust.

ABC NewsABC News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시리즈로 형성된 여론

넷플릭스의 앤솔로지 시리즈 <괴물>의 제작자 라이언 머피(Ryan Patrick Murphy)는, 2024년 10월 공개된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Monsters: The Lyle and Erik Menendez Story)>에 대해 ABC가 주목했던 현상과 같이 '틱톡 내 메넨데즈 형제와 관련된 수천 개의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시리즈 <괴물: 메덴네즈 형제 이야기>는 2주 연속(9월 16일~22일/ 9월 23일~29일 주간) 전 세계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총 7시간 54분 분량의 시리즈는 글로벌 TOP 10 차트에 7주 연속 이름을 올리며 꾸준한 화제성과 높은 인기를 입증했다.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가 2024년 9월 19일 공개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넷플릭스는 형제의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10월 7일 추가로 공개했다. 이어, 다큐멘터리에서 편집되었거나 미공개로 남겨졌던 인터뷰와 토론을 담은 팟캐스트 콘텐츠도 함께 제작되어 공개되며, 사건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산시켰다.

해당 콘텐츠들이 공개된 후, 미국의 유명 모델 킴 카다시안(Kimberly Noel Kardashian)과 코미디언 로지 오도넬(Rosie O'Donnell)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메넨데즈 형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회자된 메넨데즈 형제 사건은 이제 단순한 과거 범죄의 재조명을 넘어, 콘텐츠가 사회 인식은 물론 법적 판단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자리잡았다.

넷플릭스가 선보인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형제의 서사를 새롭게 조명하며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틱톡을 비롯한 SNS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이야기를 ‘과거의 범죄자’가 아닌, 구조 속 피해자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지 콘텐츠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드라마,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수십 년 전 판결조차 다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오늘날의 콘텐츠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제도의 구조를 비추는 또 하나의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