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사들이 대규모 구조조정과 자산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 이하 WBD)와 디즈니(Disney)가 잇따라 수백 명 규모의 감원을 단행한 데 이어, 앨런미디어그룹(Allen Media Group, 이하 AMG)도 보유 방송국 매각을 공식 검토하며 사업 재편에 나섰다. 전통방송(Linear TV)의 침체와 스트리밍 중심의 재편 흐름 속에서 미국 전통 미디어 산업의 체질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WBD, 선형TV 부문 100명 미만 감원…스핀오프설 재점화
WBD는 최근 TNT, TBS, CNN, 푸드네트워크(Food Network), 디스커버리, TLC, 카툰네트워크(Cartoon Network), 터너클래식무비(TCM) 등 주요 케이블 채널을 포함한 전통TV 부문에서 두 자릿수 규모, 최대 100명 미만의 인력을 감원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특정 채널이나 기능이 아닌, 전반적인 효율화를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이번 감원은 WBD가 조직을 ‘글로벌 TV 네트워크(Global Linear Networks)’와 ‘스튜디오·스트리밍(Studios & Streaming)’으로 이원화한 직후 단행된 조치로, TV 채널 부문을 별도 분사하는 스핀오프 가능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앞서 컴캐스트가 케이블 부문을 '버센트(Versant)'라는 별도 조직으로 분리한 구조와 유사한 행보다.
1분기 실적 역시 전통TV 부문에서는 위기였다. WBD의 글로벌 TV 네트워크 매출은 전년 대비 7% 감소한 48억 달러(약 6조 9,600억 원)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15% 줄어든 18억 달러(약 2조 6,100억 원)에 머물렀다. 특히 광고 수익은 12% 감소한 18억 달러로, 미국 내 네트워크 시청률이 27% 급감한 데 따른 영향이 컸다. 유료방송 가입자 감소로 유통 수익도 9% 주는 등 전 부문에서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제3자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이 증가하면서 콘텐츠 수익은 44% 증가한 3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2분기에는 파이널 포(Final Four) 부재에 따른 광고 수익 감소와 프랑스오픈, 스탠리컵, NASCAR 등 스포츠 중계로 인한 일시적 제작비 증가가 겹치면서 약 3억 달러의 비용 상승이 예고됐다. CFO 군나르 비덴펠스는 3분기까지는 역풍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NBA 중계권 부재가 광고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대학농구(NCAA) 남자 디비전 I 챔피언십의 준결승전으로, 매년 3~4월 'March Madness'의 하이라이트 경기이다. CBS와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는 중계권을 공동 보유하며, 짝수 해는 WBD(TNT·TBS), 홀수 해는 CBS가 파이널 포를 중계한다. 미국 방송사 입장에서는 높은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이다.
디즈니, 2025년 들어 네 번째 감원…TV·영화 마케팅 전반 압축
디즈니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백 명 규모의 인력을 추가 감원했다. 이번 조치는 영화·TV 마케팅, 홍보, 캐스팅, 개발, 기업 재무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으며, 전체 팀 단위의 해체는 피하면서 내부 조직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2025년 들어 네 번째이자 가장 큰 폭의 감원이다.
이전에는 3월 ABC 뉴스그룹과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 인력의 약 6%인 200명 감원, 2024년 10월 ABC 뉴스와 지역 방송국 중심의 75명 감원, 2024년 7월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텔레비전(DETV) 부문 140명 감원 등 일련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디즈니는 최근 ABC와 훌루(Hulu)의 스크립티드 콘텐츠 팀을 통합하고, ABC 시그니처를 20세기 텔레비전 산하로 편입시키는 조직 재편도 단행했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2025년 2분기(1월~3월) 실적에서 예상치를 웃도는 성과를 냈다. 순이익은 32억 8,000만 달러(약 4조 7,500억 원)로 흑자 전환했고, 전체 매출은 7% 증가한 236억 달러(약 34조 2,200억 원)를 기록했다. 디즈니+, 훌루 등 스트리밍 부문은 총 336백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의 개선을 보였다.

반면 전통TV 네트워크는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매출은 13% 감소한 24억 2,000만 달러였고, 특히 국제 부문은 55% 급감하며 2억 2,300만 달러에 그쳤다. 인도 스타 인디아 사업의 정리와 시청률 하락, 광고 단가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AMG, 방송국 매각 공식화…1조 원대 자산 정리 나설 듯
앨런미디어그룹(AMG)은 미국 21개 도시에서 운영 중인 ABC·NBC·CBS·FOX 계열 방송국 28개를 매각할 수 있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투자은행 모엘리스 앤 컴퍼니(Moelis & Company)를 고용했고, 이미 여러 인수 제안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바이런 앨런(Byron Allen)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 엄청난 투자에 대한 수익을 실현할 시기”라며 매각의지를 드러냈다. AMG는 지난 6년간 1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방송국을 매입했으며, 현재는 10개의 24시간 케이블 채널, 5개의 디지털 스트리밍 플랫폼, 무료 AVOD 서비스(Local Now), 스포츠 브랜드 HBCU GO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재무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2024년 9월 기준, 9,990만 달러의 단기 대출이 남아 있고, 2027년까지 만기인 8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장기 대출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AMG는 2024년 5월에 전사적 감원을 단행하며 비용 절감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앨런은 지난해 파라마운트 글로벌 인수 제안(300억 달러), 디즈니 ABC 및 FX/내셔널지오그래픽 인수 제안(100억 달러) 등 공격적 인수 시도로 주목받기도 했다.
전통 방송의 위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의 공통된 흐름은 ‘전통TV 축소’와 ‘스트리밍·콘텐츠 중심 전환’이다. 시청률 하락과 광고 단가 하락, 유료방송 가입자 감소로 인해 전통TV는 수익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 조직 재편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국내 방송사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전통 방송사들이 스포츠 콘텐츠 확보, 제3자 대상 콘텐츠 판매 및 라이선스 확대,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전략적 협력이 새로운 수익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방송 중심의 구조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콘텐츠 IP의 글로벌 유통과 스포츠 중계권 확보, 기술 기반 제작 인프라의 확보가 향후 방송과 미디어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키워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방송사들의 구조조정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새로운 수익 중심으로의 전략적 시프트(Shift)이자 생존 방식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