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습관은 늘 바뀐다. 어떤 습관은 시간과 기술 발달에 따라 죽는다. 이제 미국은 유료 방송의 죽음(Death of Pay-TV)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료 방송이 보지 않는 미국인 10명 중 3명(34%)은 케이블TV 등 유료 방송을 한번도 가입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한번도 유료 방송을 보지 않은 인구도 10명 중 1명(11.5%)이나 됐다. 코드 커팅이 아니라 코드 네버의 개막이다.
[미국인 10명 중 6명 만 유료 방송 시청]
2022년 10월 22일 리히트먼 리서치 그룹(Leichtman Research Group)이 내놓은 ‘미국 유료 방송TV 현황(Pay-TV in the U.S. 2022)에 따르면 유료 방송 가입가구가 매년 줄어들어 2022년 현재 전체 가구(TV households)의 66%만이 가입하고 있었다.
5년 전만해도 유료 방송(Pay TV) 가입가구는 79%였고 10년 전에는 거의 88%였다. 10명 중 6명 만 유료 방송에 가입하고 있는 셈인데 이제 미국에서는 유료 방송의 절대적인 콘텐츠 시청 매체라고 부를 수 없다. 유료 방송이 비운 자리에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자리 잡았다. 이른바 유료 방송을 떠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기는 ‘코드 커팅(Cord-Cutting)’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사실은 상당수의 시청자들(대부분 젊은 시청자)들이 평생 한번도 유료 방송을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TV콘텐츠를 보는 연령이 도래할 때 이들은 케이블TV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했다. 닐슨이 발표한 TV통합 시청률(The Gauge)에 따르면 2022년 9월 미국 TV시청 가구의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비중은 36.9%에 달했다. 하루 10시간을 TV를 본다면 3.6시간을 스트리밍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가 ‘반지의 제왕’ TV시리즈 ‘힘의 반지(The Ring of Power)’를 시작했고 스포츠 중계(목요일 풋볼)까지 자세하면서 크게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의 이용 점유율은 3.9%에 달했다. 또 광고 기반무료 스트리밍 서비스(FAST)인 플루토 TV(Pluto TV)도 점유율 1%로 처음 차트에 등장했다. 무료 버전 스트리밍까지 이제 콘텐츠 시장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케이블TV 이용률은 33.8%에 그쳤다.
리히트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유료 방송을 보지 않는 가구(34%) 중 34%는 한번도 유료 방송에 가입하지 않은 코드 네버(Cord-Never) 세대들이다. 코드네버 세대 중 절반 이상(54%)은 18~34세 세대다. 결국 전체 미국 가구의 11.5%가 유료 방송을 보지 못한 세대다. 이 수치는 미국 유료 방송에 매우 의미있다.
TV시청자의 소비 습관은 20대 초반에 완성돼 나이가 들어도 왠만하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미래 콘텐츠 소비자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10년 뒤 이들이 TV시청자의 메인 시청자가 되면 유료 방송의 지위는 더욱 흔들릴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현재 45세 이상 성인의 73%는 유료 방송을 보고 있었지만 18~44세 사이는 57%만이 유료 방송을 구독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코드 커팅 속도는 느릴 수 있다. 하지만, 유료 방송(미국)은 이제는 어린 세대에서 잊혀져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전통적인 ‘유료 방송을 소비하는 습관은 점점 수명을 다하고 있다’
리히트만 리서치 그룹의 대표이자 애널리스트인 브루스 리히트먼(Bruce Leichtman)은 “유료 감소 구독의 감소는 현재 서비스의 취소 뿐만 아니라 재가입이나 신규 가입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리히트먼 조사 결과, 유료 방송을 현재 보지 않는 세대 34% 중 10.5%만이 최근 3년 사이 유료 방송 서비스를 마지막으로 구독했다. 12%는 구독을 안한지 3년이 넘었다. 나머지 11.5%는 단 한번도 유료 방송을 본적이 없는 세대다.
[점점 힘을 잃고 있는 케이블에서의 NFL 효과]
통상적으로 미국은 매년 3분기(7월~9월 말) 유료 방송 구독자가 늘어난다. 대학 미식축구(NCAA)와 미국 프로 미식축구리그(NFL)가 개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3분기 유료 방송 구독자가 증가보다는 ‘감소 폭이 줄어드는 시기’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존 지상파 방송과 함께 ESPN 등 케이블TV가 주로 NFL 스포츠 리그를 중계했지만 이제 왠만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모두 NFL을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는 목요일 저녁 경기(TNF)를 단독 중계하고 있다. NFL리그 역시 자체적으로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월 4.99달러) ‘NFL+’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전국과 지역 경기 모두를 방송하고 있다.
다만 미국 지상파 방송인 폭스(FOX)와 CBS가 중계하고 있는 일요일 전국 NFL 경기(오후 4시 25분)의 경우 아직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아직은 일요일 저녁은 미국도 지상파와 케이블의 시간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약진은 케이블TV에 좋을리 없다.
3분기 미국 유료 방송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된 또 다른 이유는 후보TV(Fubo TV) 등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가상 유료 방송 사업자(VMVPD)의 등장이다.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으로 실시간 TV채널들을 송출하는 VMVPD는 가입과 탈퇴가 보다 유연하다. 물론 NFL만을 본다고 하면 20달러를 추가로만 내면 되는 기존 유료 방송이 저렴하다.
NFL을 중계하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은 확실히 시즌 시 많은 구독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피콕의 유료 가입자들은 슈퍼볼과 시즌 시작 때 집중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피콕의 성장은 스포츠(NFL) 때문에 유료 방송에 가입하는 흐름을 늦추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NFL은 여전히 미국에서 여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각 방송사들은 NFL 중계를 위해 매년 10~27억 달러를 쓰고 있다.
피콕 유료 가입자 증가 추이(버라이어티)
NFL 경기 중계가 유료 방송 구독자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이 맞다면, 새로운 가입자들은 NFL 시청률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또 TV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과 파라마운트+(Paramount+)에서도 방송돼 통합 시청률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유료 방송의 문제는 수익 감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한국 유료 방송(케이블TV, IPTV) 가입자는 3,645만 명 정도다. IPTV는 소폭 늘었지만 케이블TV가입자는 감소하고 있다. 국내 케이블TV 1위 사업자는 LG유플러스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2018년 13%대에서 2021년 10%(10.85%)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반면 KT IPTV는 2018년 20% 초반에서 2021말 유료 방송 점유율이 23.19%에 달했다. 이에 2021년 말 기준 IPTV와 케이블TV의 가입자 차이는 약 676만명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코드 네버나 코드커팅 등 미국 만큼의 드라마틱한 감소는 없다. 그렇다고 유료 방송이 강점이 있거나 향후 시장이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불안함이 도사린다.
국내 방송 가입자들이 유료 방송을 해지하지 않는 이유는 철처히 경제적이다. 유료 방송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데다 대부분이 인터넷, 휴대전화와 묶음 상품으로 가입하고 있기 때문에 해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크게 유리하지 않은 탓이다.
또 코드 커팅이 일어날 만한 스트리밍 콘텐츠가 상당히 부족하다. 웨이브와 티빙, 쿠팡플레이 등이 현재 국내에서 방송되는 대부분의 TV콘텐츠를 방송하고 있지만 오리지널은 매우 빈약하다.
국내 유료 방송 플랫폼의 문제는 수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VOD 매출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스트리밍 서비스 확대 이후 크게 감소하고 있다. 방송이 끝난 드라마나 영화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만큼, VOD로 유료 결제하는 인구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유료 방송 매출 감소는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처럼 지상파-케이블 TV 플랫폼-PP-스트리밍 서비스 등 방송 수익 선순환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앞으로 국내 유료 방송 플랫폼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더욱 밀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