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와 공영방송의 갈등 ② – 지역 방송의 붕괴와 공공성의 미래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은 단순한 재정 조정이 아니다. PBS는 지난 5월 말,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언론 예산을 폐지했다”며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PBS는 “정권이 언론 보도 성향을 이유로 자금을 통제하려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제1수정헌법(표현의 자유) 위반을 주장했다.

NPR도 비슷한 논리로 소송에 돌입했고, CPB(공공방송공사, the Corp. for Public Broadcasting)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이사 3인을 해임했다며 별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사라질 수 있다”…지역방송국의 절박한 호소

이번 예산 삭감 조치가 특히 타격을 주는 곳은 지역 단위 PBS 가맹 방송국들이다. Lakeland PBS(미네소타)는 운영 예산의 절반이 상이 연방 지원에서 나오므로 이번 조치가 실행되면 존재 기반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도시는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 전체 1,500개 이상의 카운티에서는 PBS가 유일한 뉴스 소스인 경우도 많다. 교육, 지역 정치, 재난 정보 제공 등 PBS의 역할은 지역공공 인프라의 일부분으로, 이들 방송국의 폐쇄는 곧 ‘미디어 사막(media desert)’의 확산을 의미한다.

어린이 콘텐츠의 붕괴…‘교육 평등’의 기반 흔들리다

PBS가 사라질 경우 가장 먼저 사라질 것으로 우려되는 것이 바로 ‘비영리 아동 콘텐츠’다. 대표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 ‘다니엘 타이거’, ‘몰리 오브 디날리’는 교육 심리학 기반으로 개발되어, 유아기 발달에 맞춘 언어 습득과 수 개념 학습, 공감 능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특히 상업 광고 없이 운영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콘텐츠 외 광고나 외부 압력 없이 순수 교육에 집중할 수 있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PBS Kids 콘텐츠를 시청한 아동은 타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한 아동 대비 문해력과 수리력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다. 또한 해당 콘텐츠는 소수 인종 아동이나 비영어권 가정 출신 아동에게도 언어 습득 및 사회 적응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이 공공 교육의 연장선이자 디지털 교육 불균형을 보완하는 장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프로그램이 수익 중심의 상업 플랫폼으로 콘텐츠가 이동할 경우, 이 같은 고품질의 공교육 기반 프로그램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기반의 유료 요금제가 적용되면, 저소득층 가정은 아예 접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경우 교육 콘텐츠는 다시 ‘계층화’되고, 교육 평등이라는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학부모 대상 조사에 따르면, 89%의 응답자들이 PBS KIDS가 자녀의 학교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으며, Nick Jr.(72%), Disney+(67%), YouTube(64%) 등 주요 경쟁 플랫폼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82%의 응답자는 PBS KIDS를 가장 교육적인 미디어 브랜드로 꼽았으며, 이는 2위인 Nick Jr.(45%)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출처 : PBS, TRUSTED. VALUED. ESSENTIAL. 2024)

디지털로 대체될 수 있을까?…“현실은 인프라 불균형”

PBS의 CEO 폴라 커거(Paula Kerger)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어느 정도 PBS 콘텐츠는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전체 기능의 대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커거는 “디지털로는 콘텐츠만 존재할 뿐, 지역 사회가 함께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특히 인터넷 접근성이 낮은 농촌 지역이나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방송 신호 기반의 콘텐츠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스트리밍이 접근의 평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치와 언론의 긴장, 어디까지 가야 하나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산을 통해 '공영 미디어를 길들이기'라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PBS와 NPR은 급진 좌파의 괴물(radical left monsters)”이라 지칭하며, “보수 유권자가 낸 세금을 이들에게 줄 수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언론에 대한 편견과 정치적 분노가 섞인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것이며, 예산 중단이라는 형태로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국제 기준에 역행하는 미국…북유럽은 ‘정보 복지국가’ 지향

현재 미국은 공영방송 예산이 연방 예산의 0.01% 수준에 불과하다. 1인당 기준으로 따지면 연간 1.60달러 수준이다. 반면 스웨덴은 연간 142달러, 노르웨이는 114달러, 영국은 98달러를 각각 1인당 공영방송 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다. 정보 격차를 줄이고,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하기 위한 ‘정보 복지’ 차원의 투자인 셈이다. 이와 비교하면 미국은 정치적 편향 논쟁에 갇혀 공영방송의 가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공영방송의 가치…‘모두를 위한 정보’ 인프라

결국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시청률이나 수익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정보 접근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 즉, 공적책임에 있다. 공영방송은 특정 계층이나 소비 능력이 있는 시청자만을 위한 미디어가 아니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지역·계층·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양질의 정보와 교육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이다.

단순히 방송을 제작하고 송출하는 기술적 의미를 넘어서, 정보 격차를 줄이고 소외된 지역과 계층을 포용하는 기능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 중 하나이다. 정보와 교육 콘텐츠의 ‘보편적 접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권리이며, 공영방송은 이 권리를 실현하는 최전선에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공영방송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민주주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이자 공공성의 실천이다.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문제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호 장치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Newsletter
디지털 시대, 새로운 정보를 받아보세요!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유료 구독 프리미엄 독자들에게는 글로벌 미디어 관련 뉴스레터, 월간 트렌드 보고서, 독점 비디오 콘텐츠, 타깃 컨설팅(요청시)이 제공됩니다.

스트리밍 비즈니스, 뉴스 콘텐츠 포맷,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할리우드와 테크놀로지의 만남 등의 트렌드를 가장 빠르고 깊게 전합니다. '학자보다는 빠르게 기자보다는 깊게'는 미디어의 사명입니다.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
인사이트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