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AI를 이용한 영어와 라틴아메리카 스페인어 더빙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은 3월 초부터 '엘 시드: 라 레옌다(El Cid: La Leyenda)', '미 마마 로라(Mi Mamá Lora)', '롱 로스트(Long Lost)' 등 12개의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시작으로 AI를 이용한 자동 더빙 서비스를 지원한다.
아마존은 기존 작품들 중 더빙 서비스가 없었던 일부 콘텐츠를 대상으로 AI와 더빙 전문가가 협업해 제작하는 하이브리드 더빙을 시범 도입한 것이다.

유튜브도 지난 해 말부터 AI 자동 더빙 기능을 활용해 크리에이터들이 여러 언어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힌디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며, 사용자가 원본 음성과 AI 더빙 음성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해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가 포르투갈 범죄 드라마 '반다(Vanda)'의 영어 더빙을 AI 기업 딥더브(Deepdub)로 제작했고, 실베스타 스텔론(Sylvester Stallone)이 출연한 액션 영화 아모르(Armor)에서도 AI 더빙 스타트업 기업인 일레븐랩스(ElevenLabs)의 기술을 사용하여 스텔론의 전문 더빙 성우였던 드로발의 목소리를 재현하게 된다. 드로발은 50년 동안 스텔론의 프랑스어 목소리를 맡았으나 지난 2024년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기존의 인간 성우가 아닌 AI 기술을 활용한 더빙이 영화와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반다의 AI 더빙을 제작한 딥더브는 1,000시간 이상의 콘텐츠를 AI를 통해 더빙하면서, 녹음 속도를 70% 단축하고 비용도 최대 5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 영상 게임 더빙 프로듀서인 PCB 프로덕션의 키스 아렘 대표는 “많은 프로젝트가 최고의 더빙 품질보다는 ‘충분히 좋은(just good enough)’ 품질을 원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성우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성우협회(NAVA) 회장은 “이미 여러 성우들이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무엇보다 AI 더빙 여부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성우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전체 성우 일자리의 80%가 비노조(non-union) 형태이기 때문에, 성우들의 권익 보호가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AI의 급격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배우노조(SAG-AFTRA)는 AI로 생성된 성우 복제본을 사용할 때 배우의 동의와 보상을 의무화하는 협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최근 협약에서는 배우의 목소리를 다른 언어로 변형하는 데 AI를 사용할 경우 잔여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 상원에서는 인물의 음성이나 외모를 동의 없이 복제한 AI 콘텐츠를 금지하는 '노 페이크스(NO FAKES)' 법안이 초당적으로 발의되기도 했다.
한편, 해외 제작물의 현지화(localization) 과정에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AI 더빙 기술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플로리스 AI(Flawless AI)와 같은 회사는 AI를 이용해 영상 속 배우의 입모양을 변경하여 실제 성우의 목소리와 정확히 일치하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을 제공하면서, 인간의 창의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성우 업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AI 기술 활용에 대한 반감이 크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성우로 유명한 베로니카 테일러는 “모든 연기 기회는 배우에게 소중한 것이며, AI가 이를 대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성우의 입지를 좁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AI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중요한 것은 이를 인간 중심적으로 통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AI 기술이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기여하고 있지만, 반면 성우나 창작자들의 권익과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만큼 균형 잡힌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성우들도 새로운 전략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막을 수는 없는 만큼, AI와 공존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마존 프라임의 하이브리드 더빙 방식처럼, AI가 기본적인 더빙을 생성한 후(초벌 더빙), 성우가 감정 표현을 더하고 품질을 개선하는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AI에 라이선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AI와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 중 하나는 팬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유튜브, 트위치, 팟캐스트 등에서 개인 브랜드를 강화하고, 오디오 드라마나 오디오북 제작과 같은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를 활용한 새로운 기회를 찾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동시에, 성우와 창작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수적이다.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AI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