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송의 생존 해법, 베드록… 기술 플랫폼 공유가 만든 새로운 OTT 모델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등 글로벌 OTT 공룡들이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는 가운데, 유럽 방송사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트리밍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중심에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한 기술 플랫폼 기업 ‘베드록 스트리밍(Bedrock Streaming)’이 있다. 유럽의 방송사들은 콘텐츠 중심의 직접 소비자 서비스(B2C)를 지향하기보다, 기술과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하여 ‘글로벌 테크 기업 수준의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유사한 시도를 했던 프랑스의 OTT 서비스 살토(Salto)는 실패했고, 베드록(Bedrock)은 살아남았다. 두 모델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실패한 Salto, 살아남은 Bedrock

Salto는 2020년, 프랑스 주요 방송사인 France Télévisions, TF1, M6가 공동으로 출범한 OTT 서비스였다.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한 ‘프랑스판 넷플릭스’를 목표로 설립 했지만, 단기간에 이용자 확보에 실패하면서 2023년 3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살토의 실패 원인으로는 콘텐츠의 차별성 부족, 플랫폼 완성도 미흡, 그리고 유료 구독(SVOD) 중심의 단일 모델이 한계로 지적됐다.

반면 베드록(Bedrock)은 같은 시기 출범했지만, 전략부터 달랐다. 베드록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프랑스 M6 Group과 독일 RTL Group의 합작으로 탄생한 베드록은 방송사들을 상대로 B2B 기술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콘텐츠를 직접 서비스하기보다, 방송사들이 각자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지표면 아래의 단단한 암석이나 근본적인 기반을 뜻하는 'Bedrock'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도 이때문이다.

‘방송사는 콘텐츠, Bedrock은 기술’이라는 분업 전략

Bedrock은 단일한 기술 플랫폼을 기반으로 유럽 각국 방송사들이 자체 OTT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프랑스 M6+, 네덜란드 Videoland, 독일 RTL+, 헝가리 RTL+ 등이 베드록 플랫폼을 통해 운영 중이며, 이용자는 플랫폼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지역화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베드록은 90%의 기술적 기반(Core)을 파트너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10%는 각 방송사가 원하는 UI, 수익 모델, 콘텐츠 전략에 맞게 맞춤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면 실패한 살토(Salto)는 하나의 프랑스 브랜드로 유료 구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 서비스였고,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없이 넷플릭스·디즈니+와 경쟁하다가 밀려난 구조였다.

레거시 방송이 넷플릭스 보다 강한 이유는?

레거시 방송사들이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콘텐츠 외에도 ‘전달력’과 ‘사회적 기반’에서 넷플릭스보다 우위를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베드록의 CEO, 조나스 잉글월(Jonas Engwall)은 ​팟캐스트 The Media Odyssey를 통해 '레거시 방송이 넷플릭스 보다 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유럽의 경우 지역 밀착 콘텐츠 제작 역량이 크다. 뉴스, 시사, 다큐멘터리, 스포츠 중계 등은 로컬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 공영방송을 통해 축적된 신뢰도 역시 매우 높다. 또한, 지역 스타 시스템과 문화적 공감대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능력도 글로벌 플랫폼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둘째, 실시간 방송과 스포츠 중계에 강하다. 재난 속보나 선거 개표 같은 국가의 중요한 순간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여전히 방송의 고유 영역이다. 스포츠 중계권 역시 많은 레거시 방송이 보유하고 있다.

셋째, 오랜 광고 네트워크와 지역 기반 인프라를 통해 안정적 수익 모델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료 접근성(Free-to-Air)과 편성 기반 큐레이션은 특히 중장년층에게 높은 만족도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방송사는 여전히 ‘공공성’과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를 가진 브랜드로서의 힘이 있다고 조나스는 강하게 어필한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경쟁을 넘어서는 영역이며, 넷플릭스조차 쉽게 넘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기술과 협력, 그리고 생존

베드록(Bedrock)의 성공 요인은 단순한 기술력만은 아니다. 파트너 방송사들과의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능을 함께 기획하고 실험하며 공유하는 ‘기술 협동조합’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예컨대, M6가 세로형 숏폼 콘텐츠 기능을 먼저 시도하고, 그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타나면 다른 방송사들도 해당 기능을 도입했다. 한 번 개발된 기능은 전체 파트너가 사용할 수 있으며, 이는 개발 비용 절감과 기술 품질 고도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게 한다.

또한 Bedrock은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오디오북, 팟캐스트, 라이브 방송, 매거진 등 다양한 콘텐츠 포맷을 통합한 ‘라이프스타일 번들’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앱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며, 이탈률(Churn)을 낮추는 전략이기도 하다.

한국 OTT의 시사점

한국 역시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과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다양한 OTT 플랫폼이 존재하지만, 각기 다른 기술 기반과 제한적인 협업으로 인해 콘텐츠와 기술이 분리되어 있다. 특히 글로벌 테크 기업과 달리 국내 방송사와 OTT 플랫폼이 기술 투자에 소극적인 것도 사실이다.

고도의 기술 발전 없이 단독 OTT 플랫폼으로 넷플릭스, 아마존처럼 기술 우위에 있는 글로벌 테크 플랫폼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힘든 싸움일 수 밖에 없다. 각자 독립적으로 OTT를 구축할 경우, 투자 효율이 떨어지고 글로벌 수준의 사용자 경험(UX)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베드록의 사례는 방송사 간 기술 연합을 통한 경쟁력 확보와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번들링 전략이 향후 OTT 시장에서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유럽에서 베드록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대만, 태국, 베트남 등) 사이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모델이다. 각국 방송사들은 각자의 콘텐츠와 수익 모델은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도, 스트리밍 기술, 사용자 경험(UX), 광고 시스템, AI 추천 기술 등은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 진정한 경쟁력은 단지 ‘좋은 콘텐츠’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안정적이고 편리하게 전달하느냐’도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실패한 살토(Salto)는 콘텐츠 만으로 경쟁했지만, 베드록(Bedrock)은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방송사들과 함께 진화하며 살아남았다. 한국 미디어 산업도 이제 ‘기술과 콘텐츠의 동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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