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의 인권과 상상력, 창의성을 존중하고 증진하자는 의미에서 제정된 날이다. 그동안 어린이날을 맞아 각국의 방송사, OTT, 극장 등 문화 콘텐츠 산업은 어린이와 가족 시청자들을 위한 특별 편성 및 이벤트를 마련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어린이들이 TV를 떠나 유튜브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어린이를 시청자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조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형식적 방송 편성… 진정성 있는 기획은 실종
2025년 어린이날,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은 오전 시간대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나 과거 인기 프로그램의 재편집본을 스페셜로 방송했다.
하루 동안 어린이날 특집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편성한 채널은 KBS1, KBS2, EBS1, 채널A로 각 3편씩이다. EBS는 채널 특성상 오전 시간대에 꾸준히 어린이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채널A는 종편 중 유일하게 3편의 특선 만화를 배치해 눈에 띄는 시도를 했다.
KBS1은 ‘전설의 고향 구미호’와 ‘뽀로로 극장판 바닷속 대모험’, KBS2는 ‘사랑의 하츄핑’, MBC는 ‘쥬라기캅스 극장판’, SBS는 ‘헬로카봇’ 시리즈를 편성했다. EBS는 ‘이벤져스: 어린이날을 지켜라!’, ‘뽀로로 20주년 특집’, ‘꼬마버스 타요의 에이스 구출작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가장 적극적인 편성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편성표를 들여다보면 문제점도 드러난다. ‘뽀로로’ 애니메이션이 지상파와 종편을 막론하고 중복 편성되었고, 대부분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오전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오후 시간대는 평소처럼 성인 대상 예능, 드라마, 뉴스가 다시 채워졌다. 명목상 어린이날 특집이지만, 하루 전체를 아우르는 편성 전략이나 주제의 깊이를 갖춘 기획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어린이날은 애니메이션 몇 편으로 채워지는 형식적인 이벤트에 머무르고 있다.
방송사 | 방송 시간 | 프로그램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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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 08:40 | 어린이날 특집 애니메이션: 전설의 고향 구미호 |
KBS1 | 12:10 | 어린이날 특집 애니메이션: 뽀로로 극장판 바닷속 대모험 |
KBS1 | 15:30 | 2025 KBS 창작동요대회 |
KBS2 | 09:30 | 어린이날 특선 영화: 사랑의 하츄핑 |
KBS2 | 13:00 | 어린이날 기획: 5회 공부와 놀부 |
KBS2 | 22:00 | 개그콘서트 스페셜 - 어린이날 기획 |
MBC | 07:25 | 어린이날 특선 영화: 쥬라기캅스 극장판 - 전설의 고대생물을 찾아라 |
SBS | 08:40 | 어린이날 특집 극장판: 헬로카봇 - 수상한 마술단의 비밀 |
채널A | 07:00 | 어린이날 특선 만화: 출동! 뽀로로 레인저스 |
채널A | 12:00 | 어린이날 특선 만화: 뽀로로와 몬스터 놀이공원 |
채널A | 12:40 | 어린이날 특선 만화: 공룡 삐와 아기 미라 대소동 |
EBS | 09:40 | 어린이날 특집: 이벤져스 - 어린이날을 지켜라! |
EBS | 13:00 | 특집 애니메이션: 뽀로로 20주년 스페셜 - 출동! 리나왕국 대작전 |
EBS | 13:50 | 어린이날 특선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의 에이스 구출작전 |
일본도 비슷한 흐름… NHK만 참여형 프로그램 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5월 5일이 어린이날인 일본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NHK의 교육 채널인 E텔레는 <모두 모여요! 어린이 노래잔치 – 어린이날 신청곡 스페셜>이라는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전국의 어린이와 보호자가 사전 신청한 인기 동요를 바탕으로 NHK 캐릭터와 어린이 출연자들이 함께 무대를 꾸미는 방식으로, 오전 9시부터 45분간 방영되었으며 저녁 7시에 재방송도 진행되었다.
반면 일본의 민영 방송사는 한국과 유사하게 캐릭터 중심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편성했으며, 생방송이나 참여형 프로그램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OTT는 기획전 중심… 신작은 소수, 오리지널은 사실상 부재
OTT에서는 웨이브(Wavve)가 어린이 예능 ‘랜선육아왕’을 어린이날에 맞춰 공개한 것이 유일한 오리지널 콘텐츠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주요 플랫폼이 다양한 어린이용 콘텐츠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어린이날을 기념한 별도의 기획전이나 행사는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이를 위한 극장 영화 '전무(全無)'… 2025년 어린이날, 상영작 ‘0편’의 충격
2025년 어린이날, 극장가에 어린이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10년간 어린이날을 전후해 매년 꾸준히 어린이 대상 영화가 개봉돼왔다. 특히 2016년과 2024년에는 각각 7편이 개봉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을 제외하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도 꾸준히 어린이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어린이날을 전후한 5월 초 기준으로 단 한 편의 어린이 대상 신작도 개봉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4월 30일 개봉한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있지만, 이 작품은 이미 미국에서 4월 4일 먼저 개봉한 양화로, 어린이날을 겨냥한 영화라 보기 어렵다. 결국 올해 어린이날 극장가에서는 순수 국내외 신작 어린이 영화가 '제로(Zero)'인 상황이다.
이는 가족 단위 관객 감소, 배급사의 상업적 전략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어린이날이라는 상징적 기념일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극장 산업의 현실은 더 깊은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
연도 | 영화 제목 | 개봉일 | 국가/장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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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아이들은 즐겁다 | 2021.05.05 | 한국 드라마 |
2021 | 학교 가는 길 | 2021.05.05 | 한국 다큐멘터리 |
2021 |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 | 2021.05 | 미국 애니메이션 |
2021 | 극장판 콩순이: 장난감나라 대모험 | 2021.05 | 한국 애니메이션 |
2022 | 배드 가이즈 | 2022.05 | 미국 애니메이션 |
2022 |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 2022.05 | 일본 애니메이션 |
2023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2023.04.26 | 미국 애니메이션 |
2023 |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 2023.05.04 | 일본 애니메이션 |
2023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 | 2023.05.24 | 한국 애니메이션 |
2024 | 포켓몬스터: 성도지방 이야기 최종장 | 2024.05.01 | 일본 애니메이션 |
2024 | 꼬마참새 리차드: 신비한 보석 탐험대 | 2024.05.01 | 유럽 애니메이션 |
2024 | 극장판 실바니안 패밀리: 프레야의 선물 | 2024.05.01 | 일본 애니메이션 |
‘어린이날 콘텐츠’의 구조적 부재… 어린이날을 준비하지 못하는 문화 산업
어린이날은 비록 하루에 불과하지만, 그 하루를 위해 방송과 영화 등 문화산업계와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2025년에는 이러한 준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사실상 부재한 수준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인 제작 역량과 기술을 갖췄지만, 정작 어린이 대상 콘텐츠에 대한 투자·기획·전문 인력 체계는 여전히 부실하다. 단 몇 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고, '특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어린이 콘텐츠 정책이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린이날 콘텐츠’라는 이벤트성 기획이 아니라, 어린이를 산업과 국가의 미래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기반이다.
만약 이 산업에서 어린이를 떠나보낸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토대로 미래를 준비하고, 콘텐츠 생태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