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사 콘텐츠 의존도 줄어든 가운데 SBS는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확고한 존재감 드러내...
지난 5일 열린 제61 백상예술대상(2025년)에서 넷플릭스의 예능 오리지널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 방송부문 대상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드라마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하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국내 시상식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산업 내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2025년 들어 한국 넷플릭스의 TV쇼 부문 TOP 10 중 7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채워졌다. 이는 한국에서도 넷플릭스의 방송 콘텐츠 의존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5년 한국 넷플릭스의 최고 파트너는 SBS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하는 가운데에서, 한국 넷플릭스 TV 쇼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콘텐츠는 SBS 콘텐츠였다. 당사(다이렉트미디어랩) 분석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4월까지 넷플릭스 국내 TV 쇼 순위에 포함된 콘텐츠 68편 중 17편이 SBS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였다. 이는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것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21편(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특히 방송사 콘텐츠 중에서는 JTBC와 ENA(각각 5편, 7.3%)를 큰 차이로 앞선 결과이다.

이러한 성과는 2024년 말 SBS와 넷플릭스가 체결한 콘텐츠 공급 MOU의 효과로 풀이된다. SBS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넷플릭스를 향한 콘텐츠 공급을 강화했다. 그 결과, SBS의 대표 드라마 '귀궁'과 '열혈사제'를 비롯한 예능 및 드라마들이 넷플릭스에 적극 편성되며, 2025년 상반기 기준 플랫폼 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방송사 중심에서 오리지널 중심으로 이동하는 넷플릭스
2024년까지만 해도 한국 넷플릭스는 방송사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실제로 지난해 TV 쇼 부문 TOP10에는 방송사 콘텐츠가 6편 포함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3편, 일본 애니메이션이 1편이었다.
그러나 2025년에 들어서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같은 기준(FlixPatrol, 2025.01.01~04.30)으로 분석했을 때 TOP10 중 7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방송사 콘텐츠는 채널A의 ‘마녀(The Witch)’와 JTBC의 ‘옥씨부인전’ 단 두 편에 불과했다. 나머지 1편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이 변화는 2024년 12월 26일 '오징어게임2'의 공개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2025년 들어서면서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2'에 이어 2월 ‘중증외상센터’, 3월 ‘폭싹 속았수다’, 4월 ‘악연과 약한영웅’ 등 매달 굵직한 오리지널 드라마를 연달아 공개하며, 한국은 물론 글로벌 시청자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인해 한국에서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방송사 콘텐츠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넷플릭스 일일 예능 실험, 예능 생태계 지각변동 예고
넷플릭스는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부문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일일 예능’이라 불리는 새로운 포맷을 도입하면서, OTT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청 패턴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콘텐츠가 ‘대환장 기안장(Kian's Bizarre B&B)’과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Screwballs)’이다.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 BTS 진, 배우 지예은이 출연해 울릉도 민박집에서 3주간 다양한 손님을 맞이하며 펼치는 리얼리티 예능으로, 매주 3편씩 총 9화가 공개되었다. 이 콘텐츠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글로벌 6위까지 오르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으로는 보기 드문 성과를 기록했다.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는 김숙, 홍진경, 조세호, 주우재, 장우영 등 예능 베테랑들이 출연해 미션을 수행하는 포맷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5시에 한 편씩 공개되는 구조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한국 인기 차트 1위에 오르며 강한 화제성을 입증했다.

두 작품 모두 OTT에 최적화된 30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과 정기적 공개 주기를 통해 기존 방송 예능의 일간 소비 패턴을 스트리밍 환경에 맞게 재해석한 실험으로 평가된다. 넷플릭스가 OTT 안에서도 ‘시청 리듬’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예능 소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포맷은 기존 시즌제 중심의 넷플릭스 예능 스타일에서 벗어나, ‘습관적 시청’과 ‘모바일 최적화’에 방점을 둔 전략으로 평가된다. 방송사 콘텐츠 의존도를 줄이고 오리지널 중심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예능 분야 또한 드라마 못지않은 실험이 진행 중인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심 생태계 속 방송사의 콘텐츠 전략 필요
2025년의 넷플릭스는 더 이상 방송사 콘텐츠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12월 SBS와의 콘텐츠 협력은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SBS는 넷플릭스에 대규모 콘텐츠 공급을 통해 적자폭을 줄였고, 넷플릭스 또한 SBS 콘텐츠로 한국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확대하면서 국내 구독자들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었다. 이로써 그동안 웨이브의 주주이자 독점으로 콘텐츠를 제공해왔던 SBS는 2025년부터 넷플릭스 내 핵심 콘텐츠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25 한국 넷플릭스를 분석한 결과, TV쇼 부문에서 총 17개의 SBS 콘텐츠 중 6편은 2020년 이전에 제작된 드라마였다. '가면(2015)'은 경우 10년이 지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순위 50위에 오를 정도로 효율이 좋은 콘텐츠였다. 이는 올 해 한국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과가 좋았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인 주지훈의 영향도 상당 수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심으로 재편되는 생태계에서도 한국 지상파 방송사의 라이브러리가 힘이 있다는 점은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함께 보여준 것이다. 이는 방송사가 보유한 방대한 라이브러리 콘텐츠가 플랫폼 생태계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면(2015)'이나 '닥터스(2016)'처럼 10년 전 드라마가 다시 주목받고 순위권에 오르는 현상은, 콘텐츠의 생명주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연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기존에는 콘텐츠가 방송 이후 몇 차례 재방송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구조였다면, 현재는 글로벌 OTT를 포함한 다채로운 플랫폼 환경에서 과거 콘텐츠가 ‘새로운 콘텐츠’처럼 소비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를 위해 방송사는 단순한 유통 계약을 넘어, 라이브러리 콘텐츠에 대한 체계적 리마스터링, 주연 배우의 재부상과 연계한 추천 알고리즘 연동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플랫폼 중심의 경쟁 구도 속에서 방송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갈래다. 넷플릭스처럼 대형 OTT에 콘텐츠를 공급하며 즉각적인 수익과 글로벌 노출을 확보하거나, 자사 플랫폼을 고도화하며 장기적인 수익구조를 모색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든 콘텐츠 생명주기의 전 주기를 고려한 기획·제작·관리 체계 없이는 경쟁력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와 SBS의 협업은 단순한 콘텐츠 공급을 넘어, ‘과거의 콘텐츠를 현재의 시장에서 어떻게 유의미하게 되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 사례다.
이제 방송사에게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일회성 소비로 끝내지 않고, 라이브러리를 장기적인 수익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과 실행력이다. 이는 플랫폼 생태계 변화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