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하이테크 미디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예금, 대출, 투자를 진행하는 특수 은행인 실리콘 밸리 뱅크(Silicon Valley Bank)가 2023년 3월 10일 파산했다.
은행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금 인출 러시가 이어지고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뱅크와 많은 거래를 진행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도 패닉에 빠졌다. 상당수의 자금이 SVB에 묶어 거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미국 연방 정부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하기 위해 즉각적인 시장 개입에 나섰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전문 대출 기관의 파산]
연방예금보험공사(The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D.I.C)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본사를 둔 40년 역사 실리콘밸리 뱅크를 법정관리할 이라고 2023년 3월 10일 밝혔다.
미국 정부의 시장 개입은 매우 빨랐다. 실리콘밸리 뱅크가 미국 증권가와 예금자들을 충격에 빠뜨리며 투자 보유고의 급격한 하락과 긴급 예금 인출 요청이 이어진 이틀 만에 이뤄졌다. 캘리포니아 규제 당국은 2023년 3월 9일 현재, 실리콘밸리뱅크 투자자와 계좌 보유주들의 자금 인출 규모가 42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뱅크는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매각 대상 회사를 찾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2,090억 달러(276조 원) 자산을 보유했던 실리콘밸리 뱅크는 인수자를 찾는 등 금요일 아침까지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자유도가 높은 미국에서 금융 기관의 파산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뱅크와 같은 중형규모(16위)의 은행 파산은 2008년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 이후 처음이다. 이 은행은 파산 끝에 J.P. 모건에 넘어갔다.
특히, F.D.I.C가 주식 시장이 열려 있을 때 법정 관리 등을 발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주말 영업이 종료된 후 금요일에 파산한 기관을 법정관리(receivership)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미국 재무부 장관 재닌 엘런은 은행 규제 당국과 긴급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회와 F.D.I.C 대표들도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이자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인 맥신 워터스(Maxine Waters)이 만든 대응단을 대상으로 긴급 브리핑을 시행했다.
결국 F.D.I.C는 3월 10일 금요일 거래 시작 몇 시간 만에 실리콘밸리 뱅크의 예금과 기타 자산을 보관할 국립 은행 ‘산타 클라라 은행(the National Bank of Santa Clara)’을 신설했다고 공개했다.
미국 연방 정부의 개입으로 실리콘밸리 뱅크에 예치되어 있는 1,750억 달러의 고객 예금은 이제 미국 정부의 관리 아래 놓이게 됐다. 법정 관리 은행 신설 이후 F.D.I.C는 새로운 조직이 월요일(3월 13일)부터 가동될 것이며 실리콘밸리 뱅크가 발행한 수표는 계속 처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F.D.I.D 보험 규정에 따라 최대 25만 달러까지 예치한 돈은 원금이 보전되지만 그 이상은 보장되지 않는다.
[혁신 기업의 돈을 비 혁신 영역에 투자한 은행]
실리콘밸리뱅크의 파산은 전격적이었지만 조짐은 1년 전부터 있었다. 1983년에 설립된 실리콘밸리뱅크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임직원들을 위한 예금과 전문 대출 금융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자신들도 광고에서 스스로를 ‘혁신 경제의 파트너(partner for the innovation economy)’라고 언급했지만 구시대적 영업 스타일이 실적에 발목을 잡았다.
실리콘밸리 뱅크는 밴처캐피털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의 현금을 앞세워 고성장했다. 실리콘밸리 뱅크의 예금(bank deposits)은 2018년 490억 달러에서 2020년 말 1,02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팬데믹 시절 큰 이익을 남기면서 1년 뒤인 2021년, 1,892억 달러까지 예금액이 늘었다. 2022년 말에는 은행 자산이 2,090억 달러까지 커졌다.
SVB의 투자 형태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예금은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수익에 투자했다. 실리콘밸리 은행은 저금리 시절, 고객 예금의 상당 비중을 장기 미국 국채와 주택담보대출 채권 등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스텝이 꼬였다. SVB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 직전, 막대한 채권을 사들였던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채권 매입 이후 1년도 안돼 이자율이 높아짐에 따라 보유 채권들의 매력이 떨어졌다. 이 자율이 더 높았던 새로운 국채들이 더 많은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과 동시에 스타트업 펀딩 열풍이 수그러들 것도 문제였다.경기 악화로 은행 고객(스타트업 등)들은 기존에 비해 더 많은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은행은 돈을 돌려주기 위해 자산을 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실리콘밸리 뱅크는 2023년 3월 8일 보유 주식의 일부를 강제로 매각하면서 거의 20억 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고 인정했다.
[SVB 파산에 직격타 미디어 기업들]
실리콘밸리와 미디어 기업들의 돈줄이었던 SVB의 파산은 할리우드에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웹 3.0,메타버스, AI 등으로 이어지는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열풍으로 많은 미디어 기업과 스타트업들도 SVB과 거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한번에 보고 구독할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미국 1위 기업 로쿠(Roku)는2023년 3월 10일 현금과 현금성 자산의 약 4분의 1, 즉 거의 5억 달러가 실리콘 밸리 은행(SVB)에 보관되어 있으며 언제 회수될 지 않 수 없다고 밝혔다.
로쿠는 연방증권거래원회(SEC filing)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 내용을 공개하며 현금과 현금성 자산 19억 달러 중 4억 8,700만 달러가 SVB에 묶었다고 공개했다.
로쿠는 나머지 14억 달러를 복수의 금융 기관에 분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로쿠는 “SVB에 예금되어 있는 로쿠 자금은 대부분 예금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SVB에 예치된 현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F.I.D.C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금주들에게 ‘수 주 내 사전 배당 금액을 전달할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가 될지는 알수 없다. 나머지 금액은 법정관리증서(receivership certificate)로 받게 된다. 향후 F.D.I.C가 SVB의 자산을 매각한 이후 비보험 예금자에게 배당금 지급 future dividend payments)이 이뤄진다.
상당한 회사 자산이 묶였지만 로쿠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밝혔다. 로쿠는 영업에 따른 현금 흐름 뿐만 아니라 현재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잔액이 향후 12개월 이상 영업을 버틸 정도 수준(현금 요구 사항, contractual obligations)을 넘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회사 미래에 줄 영향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쿠 매출 성장은 2022년 하반기 이후 크게 느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2023년 1분기 매출액도 전년 대비 5% 정도가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서 로쿠의 영업 지출은 2022년 4분기 71%가 늘어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로쿠는 미국 직원 200명을 정리해고 한다고 밝혔다.(전체 인력의 5%)
TV와 영화 스튜디오, 프로덕션을 위한 결제 시스템을 개발, 공급하는 랩북(Wrapbook) 역시, SVB 문제로 플랫폼에서의 대금 결제가 지연될 수 있다고 공개했다.
고객사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 회사는 SVB에 대한 급격한 예금 인출로 급여 지연 사태가 다음 주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랩북은 현재 SVB가 아닌 SVB와의 급여 처리를 재개하는 동시에 다른 은행 파트너와의 급여 지급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더버지(The Verge) 등등을 운영하고 있는 복스 미디어(Vox Media)도 상당량의 금액을 SVB에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복스 브랜드 카드도 SVB를 통해 발매된다. 펜스케 미디어는 최근 복스 미디어에서 1억 달러를 투자했다.
한편, 실리콘밸리 뱅크의 문제는 다른 지역 은행으로도 확산됐다. 시그니처 은행(Signature Bank) 또한 스타트업 회사들에게 상당한 자금을 제공해왔다. 시그니처 은행은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가족들과 네트워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First Republic Bank)는 테크 산업에 고소득 회원들을 위한 프라이빗 은행 서비스와 자산 관리로 유명한 임대사업자다. 이 회사는 최근 금리 인상에 따라 수익 창출 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텍사스 피닉스에 본사가 있는 웨스턴 얼라인스 뱅크(Western Alliance Bank)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와 별도로 다른 은행인 실버게이트(Silvergate)는 암호 화폐 투자에 큰 손실을 봐, 영업을 중단하고 회사를 청산한다고 밝혔다.
미국 지역 은행의 재정 불안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 시절로 되돌아간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실리콘밸리 뱅크와 같은 은행에 대한 규제 감독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0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 사이 자산의 은행에 대한 연방 정부의 스트레스 테스트 빈도를 줄인 것이 골자다. 실리콘밸리 뱅크 CEO인 그렉 베크(Greg Becker) 역시 이 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한때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벡커는 2023년 3월 10일 이후 자리에서 사퇴했다.
2008년 7월 캘리포니아 은행 인디맥(IndyMac)이 파산할 당시, 이 은행은 실리콘밸리 뱅크와 마찬가지로 인수자가 없었다. 연방 예금 보험 공사(F.D.I.C)는 1년 뒤인 2009년 5월까지 인디맥(receivership)을 법정관리했다.
결국 이 은행 대규모 예금자들은 예금 보험의 강제 보장 기준을 넘어선 자금의 50%만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