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의 확대로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 제작 편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작가들의 생활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작가들은 작업 시간은 길어졌고 보상을 더 줄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TV방송의 재방에 따른 추가 보상(Residual)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장 환경이 바뀌었지만, 작가 단체(WGA)와 제작자 단체(AMPTP)의 계약은 20세기에 머물러있다.
과거 방송의 주된 수익은 광고 이외 히트 프로그램이 지역 채널, 케이블TV 재방송이나 비디오 시장에 풀리면서 생기는 유통 수익이었다. 이 수익 일부는 작가들에게 추가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케이블TV 구독자가 급감하고 실시간 TV시청이 줄어들면서 이런 잔여 보상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WGA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작가-프로듀서들의 평균 주간 수입은 23%떨어졌다.
전통적으로 TV방송 시대에는 한 시즌 당 20편의 에피소드가 제작돼 작업 기간은 10달 정도였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이제 8편에서 10편 정도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이에 따라 작가들의 작업 시간도 줄었다. 이제 스트리밍 시리즈의 하위 및 중간 수준 작가들은 20-24주 또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사전 작업이 진행되면 약 14주만 일하는 경향이 있다. 작업 시간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든 것이다.
[최소 한 달 이상 제작 차질 불가피]
짧은 시즌에도 불구하고, 쇼러너들(showrunners)은 일반적으로 방송 TV에서 했던 것과 같은 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 이에 WGA는 이 시간이 시리즈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실제 시간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실제 편수가 줄었지만, 제작 기간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에피소드 당 돈을 받는 작가들을 이런 기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LA타임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쇼러너 중 40% 가량은 한 작업에 1년 정도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영화 각본 작가들의 보상도 4년간 정체되어 있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 확산 이후 극장에 개봉하는 영화들의 편수가 줄고 관람객들도 감소한 상황에서 임금 상승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스크린 작가들의 임금은 최근 5년 간 14% 줄었다고 WGA는 밝혔다.
향후 TV프로그램 차질이 불가피하다.
LA타임스는 최소 한 달은 파업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WGA는 이전 파업을 중단될 프로그램 리스트를 발표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작품들은 토크와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미 키멜 라이브. ‘지미 팰런 투나잇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Late Night With Seth Meyers’ 등은 작가들이 마지막까지 대본을 고치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방송사들은 재방송 편성이 불가하다. 광고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시즌제 TV드라마는 당장은 타격이 없지만, 장기화될 경우 이 역시 파행 운행이 불가피하다. 아직 방송되지 않았거나 새로운 가을 시즌 작품은 완성될 수 없다. 그러나 작가협회 소속이 아닌 토크쇼 기반 인터뷰 프로그램 작가나 TV뉴스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다.
[스트리밍 시대, 파업 효과는]
일각에서는 팬데믹을 겨우 끝낸 작가들이 파업을 장기화할 여력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작자협회 역시 스트리밍 서비스 등에 콘텐츠를 납품해야 하는 상황에 오랜 파업은 부담스럽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제 미국 내 사업이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다. 그리고 스트리밍 시대, 파업 효과에 따른 제작 중단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LA 카운티 경제 개발국(Los Angeles County Economic Development Corp)에 따르면 2007년 파업 당시 미국 작가와 제작 스탭들은 7억 7,20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WGA는 파업에서 회원들의 생계 유지를 돕기 위한 펀드를 적립해두고 있다. WGA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월 31일 현재 파업 펀드는 1,980만 달러다.(265억 원)
제작 중단은 엔터테인먼트 이코노미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플라워리스트, 스튜디오 건물 주, 제작 장비 기업 등 영향을 받는 곳이 한 개가 아니다.
특히, LA지역 남부 캘리포니아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2007년 파업은 100일간 지속됐다.
영화 제작 스텝들에게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미디어 기업들의 정리해고 이은 또 다른 시련이 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이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와 디지털 광고 감소, 스트리밍 서비스 부진 등으로 미디어 기업들은 대규모로 직원을 해고 하고 있다.
디즈니도 2023년 3월 7,000명의 직원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자나 스튜디오들도 작가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박스 오피스 회복이 더디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수익 확대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들은 ‘그들의 목표가 공정 거래’라고 말하지만, 결론은 어렵다.
콘텐츠 비즈니스 지형 변화 역시 AMPTP의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회원들의 이익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에 AMPTP에는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등도 회원사도 들어와 있다.
이들은 스트리밍 콘텐츠만을 편성하는 빅테크이기에 워너, 디즈니, 파라마운트 등 일반 스튜디오와 이해관계가 완전 다르다. 실제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디즈니 등 전통적인 스튜디오들의 타격이 더 심하다.
스튜디오들은 TV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양측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과거와 같이 이 둘을 화합시킬 업계 리더는 부재상태다.
2008년 파업때는 월트 디즈니 CEO 밥 아이거(Bob Iger)와 뉴스 코퍼레이션 피터 체르닌(Peter Chernin)이 양 측 중재에 나선바 있다.
한국 역시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도 미국과 같은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미국 작가협회 정도의 강도는 아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의 보상도를 더 높여달라는 창작자들의 요구가 높아질 것임은 당연하다. 대비가 필요하다.
한편, 조합은 챗GPT가 원천 자료를 생산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작가가 AI가 쓴 스토리를 각색해 완전한 집필 크레딧(written by” credit)’을 받는 길을 열어줬다.
조합이 작가들의 창작에 AI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어쩌면 고육지책으로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AI의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수만개의 사례를 참조하는 대량 언어 모델(LLM)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표절로도 보기 쉽지 않다.
또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AI 집필에 대한 기준을 시급히 만들 필요성도 있었다. 단순 교양 프로그램이나 퀴즈쇼 등에는 AI를 이용한 대본 집필과 인간 작가의 창작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 AI작가는 이미 인간의 단순 글쓰기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국의 영화 배우 노조(SAG-AFTRA) 역시, AI 배우에 대한 기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AI가 만들어 내는 자신들의 또다른 아바타의 경우 별도 인격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또 배우들은 경우에 따라 이미지나 목소리, 유사성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제작자 협회와 근무 조건에 대한 협상 중인 WGA는 향후 2주 동안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파업을 진행할 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