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케이블TV 등 유료 방송과 콘텐츠 채널 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에도 위성방송 디시 네트워크와 디즈니 간 분쟁으로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두 진영의 갈등은 스트리밍 서비스 등장 이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양 측 모두 스트리밍과의 경쟁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실탄(투자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요구 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플랫폼과 콘텐츠 진영의 갈등의 승자는 스트리밍이라는 분석이다.
[이틀간의 블랙아웃, 다시 복귀한 디즈니]
2022년 10월 3일 ABC, ESPN, FX,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등이 포함된 디즈니 네트워크의 케이블TV 채널들이 짧은 블랙아웃(Blackout, 방송송출이 중단되는 것) 뒤 위성방송 디시네트워크(Dish Network)와 스트리밍 슬링TV(Sling TV)에 다시 돌아왔다. 양측의 수신료(carriage agreement) 협상이 결렬돼 10월 1일 방송이 중단된 후(Black out) 이틀 만이다. 이와 관련 디즈니는 성명에서 “디시네트워크, 슬링과 새로운 수신료 협상을 하기로 했다다”며 “우리는 새로운 거래를 마무리하는 동안 임시적으로 채널을 다시 복귀시켜기로 했다”고 밝혔다.
[디즈니의 두 번째 블랙 아웃]
디시에 따르면 디즈니는 재송신 계약을 연장하면서 10억 달러(1조 4,000억 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디시 역시 ESPN과 ESPN2채널 등 현재 디시 TV패키지에 제외되어 있는 채널들을 포함하라고 주장했다. 현재 ESPN은 월 9달러 가량으로 케이블TV 시청료에 더해져 고객에게 청구되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또 미국 시카고, 캘리포니아 프레스노, 휴스턴, 뉴욕 등 디즈니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8개 방송 권역에 거주하는 디시 가입자에게 ABC 지역 채널을 기본 송출하라고 요청했다.양 측의 계약은 이미 2022년 9월 30일 만료됐다. 하지만, 양측은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마감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개로 물론 디시(Dish)와 디즈니 간 협상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이에 언제든 다시 블랙아웃이 닥칠 수도 있다. 사실 디시에서의 디즈니의 방송 중단로서는 플랫폼과의 두 번째 블랙아웃이다. 디즈니는 2019년 21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인수한 이후, 콘텐츠의 힘으로 유료 방송(특히, 위성방송)을 압박해왔다. 유료 방송 중 가입자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블랙아웃까지 가지 않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고 콘텐츠 스튜디오 간 M&A가 본격화되면서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간’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있다.
디즈니는 2021년 12월 스트리밍 TV 유튜브TV(Youtube TV, 실제 유료 방송처럼 실시간 채널 편성)에 수신료 협상을 요구하며 소속 18개 채널 방송을 중단한 적이 있다. 이 때도 주말 사이(토요일 중단 일요일 복귀) 재협상을 선언해 ‘실제 고객 이탈이나 환불’요구는 크지 않았다.
이번에는 협상 결렬 타이밍이 더 좋지 않았다. ABC는 인기 시트콤 ‘애벗 초등학교(Abbott Elementary)’의 새로운 시즌 등 여러 콘텐츠가 가을 신규 시즌 에피소드를 이제 공개했고 디즈니는 미국 방송에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인 ‘월요일 저녁 풋볼(NFL)’ 경기를 앞두고 위성방송을 압박해왔다. 또 미국 프로야구 MLB의 플레이오프도 한 주 앞두고 있었다. 다행히 ESPN이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월요일 저녁 미식 축구는 예정대로 방송됐다.
[블랙아웃 강행, 디시의 강공]
이번 송출 중단은 디시가 주도한 측면이 크다. 위성 방송 디시(Dish)는 콘텐츠 사업자와 수신료 협상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블랙아웃도 불사하면서 협상을 유리한 방법으로 끌고가려 하는 전략이다. 어차피 스포츠 중계권을 스트리밍 서비스(아마존, 피콕 등)에 연이어 내어주면서 가입자가 계속 빠지고 있는 디시 네트워크 입장에서는 벼랑 끝 전술 밖에 답이 없다.
결국 디시는 토요일 자정 방송을 중단한 뒤 일요일 디즈니를 협상장으로 다시 불러왔다. 매년 가입자가 빠지고 있는 디시 입장에서는 수신료 인상 여력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방송이 중단 된 주말 사이 많은 미식축구 팬들은 트위터 등에서 디시를 비난했다. 특히, 서비스 해지를 할 수 없는 주말에 방송을 끊으면서 팬들을 우롱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디시는 2022년 10월 현재 컴캐스트(Comcast), 차터(Charter), 디렉TV(Direc TV) 등에 이은 미국 4위 유료 방송 사업자로 2022년 6월 말 기준, 1,000만 명 가까운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위성 방송 가입자는 779만 명이고 스트리밍 서비스인 슬링 TV(Sling TV)는 22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계속되는 블랙아웃, 갈등의 끝은 ‘스트리밍’]
미국에서도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갈등의 골은 깊고 길어지고 있다. 디시에서 이번 블랙아웃된 디즈니 채널은 20개다. 유튜브TV와의 분쟁 때보다 2개가 많다. 방송이 나오지 않은 시간은 48시간에 못미쳤지만 실시간 방송 입장에선 짧지 않다.(미국은 주로 금요일이나 토요일 블랙아웃을 단행한다.)
블랙아웃이 길어질 경우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모두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완벽한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잇단 방송 중단은 고객에게 이탈 명분(Cord-Cutting)’을 줄 수도 있다. 방송 송출 중단이 마냥 플랫폼에 불리할 것 같지만 방송 채널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오리지널 콘텐츠의 주도권이 ‘방송사(네트워크)에서 스튜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간 상황 ‘에서 콘텐츠(방송) 송출 중단은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스트리밍으로 직행’을 정당화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고도화된 미국은 이미 2020년에는 스트리밍 서비스 콘텐츠가 케이블TV, 지상파 TV 콘텐츠를 양적으로 넘어섰다. 방송 플랫폼 경쟁 상황도 나쁘다. 미국에서는 케이블TV 등 유료 방송 가입자는 매분기 100만 명 가까이 감소하고 있다. 2022년 1분기 현재 미국 주요 유료 방송 가입자는 5,370만 명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0만 명(4.5%) 줄었다.
스트리밍 등장에 고전하고 있는 양 측은 경쟁이 아니라 협업할 때라는 주문도 많다. 애초에 가입자당 일정 비율(CPS)을 주고 있는 송출료(Carriage fee)도 가입자 감소 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미국에서도 있다. 민간 사업자간 분쟁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FCC도 '지역 의원'들의 요구에 '재송신 분쟁' 참전을 고민 중이다. 특히, 한국과는 달리 지역 사업자가 송출하는 지역 채널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상황 전개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편, 10월 1일 디시가 블랙아웃 시킨 채널은 이하 20개다. ESPN, ESPN2, ESPNU, ESPNews, ESPN Deportes, Disney Channel, Disney Jr., Disney XD, Freeform, FX, FXX, FXM, National Geographic, Nat Geo Wild, Nat Geo Mundo, ACC Network, SEC Network, Longhorn Network and Baby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