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는 여전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물론 대세가 된 스트리밍 서비스 때문이다.
전 폭스 대표이자 미국 유명 미디어 기업인 피터 체르닌(Peter Chernin)은 private equity giants Providence Equity Partners and Apollo 등 두 개 사모 펀드(private equity giants)로부터 8억 달러를 투자 받았다. 그는 이번 투자 자금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TV쇼와 영화를 공급하는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할 계획이다.
[전 폭스 대표, 스트리밍을 위한 8억 달러 규모 독립 스튜디오 구축]
프로비던스 에퀴티 파트너스(Providence Equity Partners)는 ‘노스 로드 컴퍼니(North Road Co)’라고 불리는 새로운 지주사에 5억 달러를 투자한다. 이 회사는 체르닌이 향후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할 기업이다. 또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Inc.)는 계열사를 통해 부채 금융을 조달해 3억 달러를 제공한다.
체르닌은 독일 미디어 회사 ProSiebenSat.1 Media SE로부터 스튜디오 ‘레드 애로우 스튜디오(Red Arrow Studios)’의 미국 자산을 인수해 ‘노스 로드 컴퍼니(The North Road Company)’를 설립한 바 있다.
체르닌은 레드 애로우 산하에 있는 5개 스튜디오를 2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앞서 언급한 사모 펀드에서 나왔다. 이들 스튜디오에는 키네틱 콘텐트(Kinetic Content)도 포함됐는데 넷플릭스의 인기 데이트 리얼리티 프로그램 ‘러브 이즈 블라인드’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Love is Blind)’, ‘최후통첩: 결혼할까 헤어질까(The Ultimatum)’. 라이프타임의 ‘첫 만남에 결혼하다(Married at First Sight)’ 등을 만든 곳이다. 또 쇼타임의 다큐멘터리 ‘더 서커스(The Circus)’를 만든 레프트/라이트 프로덕션(Left/Right Production)도 포함됐다.
향후 체르닌은 다양한 스튜디오와 미디어 회사를 지주사 노스 로드 아래 두면서 콘텐츠 프로덕션의 본거지로 만들 계획이다.
폭스의 인기 코미디 TV쇼 ‘뉴 걸(New Girl), 영화 ‘포드 vs 페라리(Ford v. Ferrari)’,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등을 만든 체르닌 엔터테인먼트(Chernin Entertainment banner), ESPN 전 임원 코너 쉘(Connor Schell)과 함께 설립한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전문 스튜디오 ‘워즈+픽처스(Words + Pictures)’ 등이 노스 로드 아래 편재된다.
할리우드 업계 분석에 따르면 노스로드의 기업가치는 현재 10억 달러(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레드 애로우 유닛은 기존 체르닌 엔터테인먼트 배너(Chernin Entertainment banner)에 합병된다.
체르닌은 체르닌 그룹(The Chernin Group (TCG)) 이라는 투자 회사를 이끌면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술 분야 기업에 투자도 하고 있다. 크린치롤, 카메오 등이 TCG의 투자를 받았다. 2009년 설립된 체르닌 그룹은 3개 분야에 집중한다. 미국 기술과 미디어 회사들에 대한 투자, 영화와 TV를 위한 프리미엄 콘텐츠 제작, 성장하는 이머징 마켓에서의 전략적 비즈니스 기회를 기반으로 한 수익화 등이다.
[독립 콘텐츠 지주사의 ‘스튜디오 오브 스튜디오’ 야망]
콘텐츠 스튜디오 지주사 노스 로드의 설립은 스트리밍 서비스 확산으로 글로벌 콘텐츠 비즈니스가 당분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체르딘의 전략이 반영됐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 경쟁 시대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스튜디오(a well-financed company with the ability to produce a range of content at significant volume.)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서비스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양질의 ‘스튜디오 오브 스튜디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체르닌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타이밍은 정말 좋다. 아폴로와 프로비던스는 제작비를 늘리고 앞으로도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며 “우리는 글로벌 제작 경험이 매우 많고 앞으로 큰 성장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스트리밍 경쟁 시대에는 실제 생산 경험이 있는 신뢰할 수 있고, 규모가 있는 동시에 자본이 풍부한 회사가 필하다.(There’s a need for a trusted, well-positioned, well-capitalized company that has real experience producing at scale)”고 덧붙였다.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스트리밍 서비스 간 경쟁으로 최근 수년 간 프로덕션 회사와 스튜디오에 수억 달러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넷플릭스가 2022년 1분기 가입자가 10년 만에 감소하는 등 약간 주춤하지만, 여전히 스트리밍 서비스는 TV를 넘어설 전망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용 콘텐츠 제작도 역대 최대다.
프로비던스(Providence) 북미 담당 공동 대표인 데이비스 노엘(Davis Noell)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콘텐츠 제작비는 운동 선수들 연봉처럼 계속 올라가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포로비던스는 체르닌과 15년 이상 같이 일했다.
체르닌과 노엘은 “여전히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아마존 등이 해외로 진출하고 스트리밍 서비스 고객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어 수요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이들 서비스는 대부분 프로젝트를 미리 사들이기 때문에 노스 로드는 경쟁력 있다”고 강조했다.
체르닌은 또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큰 변화는 새로운 모델이기 때문에 독립 프로덕션에서 수익성 있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스 로드는 현재 60여개 가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특히,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는 리얼리티 예능은 성공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노스 로드는 해외에서 많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체르닌의 글로벌 독립 스튜디오 리더 전략]
체르닌은 노스 로드의 CEO이자 이사회 의장(chairman and CEO) 역할을 한다. 노스 로드(President) 대표는 전임 레드 애로우 대표였던 얀 프루만(Jan Frouman)이 이끈다. 프로만은 노스 로드의 회장으로 역임하면서 글로벌 확장에 힘쓸 계획이다. 체르닌 엔터테인먼트의 베테랑 제노 토핑(Jenno Topping)은 역할을 그대로 맡으면서 노스 로드의 TV드라마, 영화 등의 제작을 전담한다. 코너 쉘 역시, 워즈+픽처스(Words + Pictures”를 맡으면서 예능,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를 총괄한다.
체르닌은 AMC네트웍스 인터내셔널 프로그래밍 담당 부사장 출신 크리스틴 존스(Kristin Jones)를 영입해 인터내셔널 TV비즈니스 대표(president of international TV)를 맡겼다. 프로만과 존스는 당분간 노스 로드의 영국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집중한다. 존스는 AMC의 첩보 드라마 ‘더 나이트 매니저(The Night Manager)’, BBC아메리카의 ‘킬링 이브(Killing Eve)’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시킨 바 있다.
다큐멘터리, 리얼리티에 강한 노스 로드지만 글로벌 시장을 위해 프리미엄 TV드라마 영화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이에 프로듀서, 작가 등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크리에이터에 대한 투자를 더욱 신경 쓸 계획이다. 체르닌은 할리우드 제작진과의 오랜 친분 관계가 장점이다.
체르닌은 시장 환경 변화로 독립 제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 유지나 장기 소유권, 더 많은 수익 배분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새로운 기회도 열린다는 판단이다. 향후 몇 년 동안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새로운 콘텐츠 펀딩 모델(new content financing models)’이 업계에 확산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체르닌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상적인 프로덕션 컴퍼니(스튜디오)는 여러 가지가 뒤섞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콘텐츠를 완전히 팔고 싶다면 선불금(upfront premium)을 받을 것이고 “투자만 받고 싶다면 재무적인 파이낸싱을 원할 것이다. 또 지역 별 권한을 따로 판매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래 스마트한 스튜디오는 콘텐츠에 유연성을 주고 각각의 쇼와 영화에 맞는 최고의 모델을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노스 로드는 인수 및 거래와 관련 ‘Centerview Partners and Moelis & Co. Gibson Dunn & Crutcher’로부터 법률 조언을 받고 있다. 레드 애로우는 Morgan Stanley, 워드+픽처스는 ‘Sidley Austin’, 프로비던스는 로펌 ‘Debevoise and Plimpton’ 등과 계약한 바 있다.
[긴축의 시대, 스튜디오 오브 스튜디오의 미래는]
그러나 스트리밍을 겨냥한 ‘스튜디오 오브 스튜디오’ 라는 체르닌의 전략이 뒤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넷플릭스가 2022년 1분기 가입자 감소에 이어 연이은 감원을 하고 있고 고유가, 인플레이션 등 경기 침체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상 등의 이유로 콘텐츠 수요도 다소 냉각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증권가의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에 대한 평가도 가입자 증가에서 ‘수익성(profitability)’으로 옮겨가고 있다. 구겐헤임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모리스(Michael Morris)는 파라마운트(Paramount)의 목표 주가를 파라마운트+구독자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라며 하향하기도 했다.
선밸리에서 열린 미디어 세미나 및 컨퍼런스 알렌&코 컨펀스(Allen & Co. conference)에서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는 “HBO MAX에 관한 지출을 줄이고 양 대신 질에 집중(quality instead of quantity)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앞서 블룸버그는 기사에서 ‘피크TV의 시대는 지나고 긴축의 시대가 오고 있다(The Age of Peak TV Is Ending. An Age of Austerity Is Beginning)’고 언급했다. 이 기사에서 블룸버그는 TV방송사들의 제작 예산이 최근 들어 30% 가량 줄었다고 보도했다. 실제 피콕(Peacock)은 TV시리즈 ‘Field of Dreams’ 제작을 보유했고 HBO MAX는 인기 드라마 ‘로스트’의 공동 제작자 J.J. 애브람스(J.J. Abrams)의 ‘‘Demimonde’ 제작을 취소했다. HBO MAX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과 동유럽, 네델란드, 터키에서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을 중단했다. 또 저작권비 지급을 줄이기 위해 일부 유럽 콘텐츠도 삭제했다.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는 올 초(2022년) 합병 후 30억 달러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밝히며 많은 영향이 콘텐츠 투자에 미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의 미디어 전문기자 루카스 쇼(Lucas Show)는 할리우드 프로듀서의 말은 인용해 “할리우드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지만, 브레이크가 서서히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the Hollywood train is still moving but the brakes are starting to squeak)”고 분석했다.
때문에 월스트리저널 등 일부 언론들은 스트리밍에서 승부를 본겠다는 체르닌의 도전과 성공 가능성을 다소 신중하게 분석했다. 또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외부 콘텐츠를 수급하는 것보다 자체 스튜디오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독자 공급하는 ‘콘텐츠 월(walled gardens)’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도 체르닌에게는 악재다. 그러나 체르닌은 그들의 콘텐츠가 스튜디오들이 채울 수 없는 핵심적인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체르닌의 바이어는 스트리밍 서비스만은 아니다. 케이블TV회사와 해외 사업자들도 노스 로드의 공략 대상이다. 그들의 예산이 많이 줄었지만 방송과 차별화를 위해선 여전히 콘텐츠가 필요하다. 특히, 체르닌이 강조하는 리얼리티,예능, 교양 프로그램(scripted content)은 실시간 TV에는 강점이 될 수 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이 장르 콘텐츠 공급은 지난 2021년 대비 22년 26% 성장했다. 또 예능은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스트리밍 비즈니스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향후 전망이 어둡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2022년 2분기 200만 명의 구독자 감소가 예상되는 넷플릭스 역시, 여전히 올해 콘텐츠 제작에 170억 달러(22조 3,300억 원)을 투입한다. 스트리밍 경쟁이 계속되는 한 투자를 급격히 줄이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체르닌의 제대로된 판매 루트를 찾는다면 투자에 대한 이익회수 희망은 더 커진다. 그동안 체르닌의 투자 성공 이력은 미래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