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도 강력한 콘텐츠의 진화, 애니메이션은 Z세대의 주류 미디어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 시장이 2024년 34조 7,700억원을 넘어서면서 스트리밍의 성장과 함께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코그니티브 마켓 리서치(Cognitive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성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2024년 251억 4,220만 달러(약 34조 7,739억 원)에 달했으며, 2031년까지 연평균 8.5%의 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031년에는 시장 규모가 약 445억 526만 달러, 한화로는 약 61조 5,502억 원까지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밥스 버거(Bob’s Burgers), 심슨(The Simpsons), 릭 앤 모티(Rick and Morty)는 미국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방송에서 10년 이상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 인기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불리는 Z세대는 더 이상 전통적인 TV 앞에 앉아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기다리는 세대는 아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등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Z세대는 기존 방송 산업의 ‘이탈 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콘텐츠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왜 Z세대의 최애 장르가 되었나?
2024년 9월 발표된 InsightTrendsWorld의 분석에 따르면, Z세대의 콘텐츠 소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는 애니메이션과 코미디였다. 특히 Z세대가 시청자의 주축을 이루는 영화의 약 43%가 애니메이션 장르일 정도로, 압도적인 선호를 보였다. 로맨스 22%, 호로물 8%, 서부극 1% 수준과는 큰 격차를 보인다.
장르 | Gen Z | Zennials | Millennials | Gen X+ |
---|---|---|---|---|
Animation | 약 43% | 약 4% | 약 3% | 약 2% |
Romance | 약 22% | 약 31% | 약 16% | 약 15% |
Horror | 약 8% | 약 6% | 약 19% | 약 6% |
Western | 약 1% | 약 1% | 약 1.5% | 약 4.5% |

이러한 경향은 아시아권에서도 뚜렷하다. 2025년 3월 발표된 태국 실팍콘대학교 연구진의 논문 「The Phenomenon of Animated Characters: A Generation Z Perspective」는 Z세대가 애니메이션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감정 이입, 자아 탐색, 정체성 형성의 장치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한 15~26세 응답자 100%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으며, 가장 선호하는 콘텐츠 유형으로 ‘애니메이션 영화’(41.9%)와 3D 애니메이션(27.1%)을 꼽았다.
Z세대는 반복 시청 성향이 강하며, 귀여운 외모, 똑똑한 성격, 주인공적 역할, 부유함 등의 요소를 갖춘 캐릭터에 특히 높은 호감을 보인다. 여성 응답자일수록 이런 속성을 가진 캐릭터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은 온라인 팬아트, 커뮤니티 공유, 밈 생성 등으로 이어지며 콘텐츠에 대한 애착을 확산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어린이 전용에서 전 세대 콘텐츠로: 애니메이션의 세부 장르 확장
과거 애니메이션은 주로 유아 및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장르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애니메이션은 명백히 세대의 경계를 넘어서는 콘텐츠로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진격의 거인',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작품은 잔혹한 전투 묘사와 사회적 은유, 복잡한 서사를 통해 성인층을 중심으로 폭넓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넷플릭스는 ‘성인 애니메이션’ 섹션을 별도로 운영한다. '아케인', '보잭 홀스맨', '빅 마우스' 등 폭넓은 연령층을 겨냥한 작품을 큐레이션하고 있다. 국내 플랫폼인 라프텔 또한 성인 대상 일본 애니메이션을 정식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며 마니아 층의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제작사들도 OTT 중심의 성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적극적이다. 로커스(Locus)는 최근 성인을 타깃으로 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퇴마록'을 제작해 올 2월에 개봉을 했고, 투니모션(Toonimotion)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숏폼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라프텔, 카카오페이지 등에 제공하고 있다.
국내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미르(Studio Mir)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데빌 메이 크라이 ', '더 위쳐:세이렌의 바'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면서 성인 대상 애니메이션 콘텐츠 제작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스튜디오미르는 최근에는 파라마운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점차 어린이용 콘텐츠 제작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성인 IP를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모든 세대를 위한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Z세대의 애니메이션 선호는 단순한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다. 이는 세대 간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감정, 상상력, 정체성, 유희, 비판의 요소까지 담아낼 수 있는 포괄적 장르로, 전 세대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유연한 콘텐츠 형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콘텐츠 정책과 규제 또한 변화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 콘텐츠’로 전제하고 접근하고 있지만, 이미 현실은 크게 달라졌다. 성인 시청자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넷플릭스와 라프텔, 크런치롤 같은 플랫폼에서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팬층을 확대하고 있다. 동시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IP 개발도 활발해 지고 있다.
Z세대를 TV로 불러 모을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어린이를 위한 장르가 아니다. Z세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자아를 투영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전환은 콘텐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존재한다.
성장하는 글로벌 시장 규모와 플랫폼 주도의 큐레이션 전략, 그리고 국내 제작사의 적극적인 참여는 애니메이션이 산업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장르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적 확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유아·아동 중심의 전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류 콘텐츠로 인식하고, 등급 분류, 유통 플랫폼, 정책 지원 전반에 걸쳐 성인 콘텐츠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Z세대가 주목하고 선택한 '애니메이션'이야말로 미래 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