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말소리만 자막'으로 사용자 선택권 확장… 접근성 패러다임 전환

넷플릭스가 '말소리만 담은 자막 기능'을 도입하며, 소리 없는 디테일 경쟁에 불을 지폈다.

넷플릭스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월 24일 공개된 시리즈 <너의 모든 것(YOU)> 시즌 5를 시작으로, 앞으로 공개되는 신규 콘텐츠에 대사만 표시되는 원어 자막 기능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기능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뿐 아니라 라이브러리 내 기존 콘텐츠와 외부 제작 작품까지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너의 모든 것> 시즌 5에서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스페인),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로 대사 전용 자막이 지원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중에서는, 현재 방영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약한 영웅 2>에 영어와 한국어 자막, 그리고 <악연>에는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 일본어, 포르투갈어(브라질) 등 다양한 언어로 대사 자막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넷플릭스 자막 기능 변화
출처: 넷플릭스(Netflix)

이전까지 넷플릭스에서 원어 자막을 사용하려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선택해야 했고, 이 자막에는 등장인물의 대사와 내레이션은 물론, 소리 효과, 움직임 묘사, 인물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사 자막’ 기능이 도입되면서, 이제는 인물의 대사와 내레이션 등 핵심적인 말소리만 자막에 표시되며, 보다 깔끔하고 몰입감 있는 시청이 가능해졌다.

넷플릭스 <너의 시리즈(YOU)>의 자막 변화
출처: 넷플릭스(Netflix)

갈수록 증가하는 자막 활용 시청 트렌드

넷플릭스는 이번 기능 도입과 관련해 미국 내 콘텐츠 시청 환경의 변화를 언급했다. 온라인 언어 학습 플랫폼 프레플리(Preply)가 미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0%가 콘텐츠 시청 시 자막을 항상 켠다고 답했으며, 62%는 일반 TV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자막을 더 자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자막을 사용하는 이유로는 가장 많은 72%가 ‘음향이 뚜렷하지 않아서’를 꼽았고, 그 뒤를 이어 60%는 ‘악센트 이해의 어려움’, 29%는 ‘집에서 조용히 시청하고 싶어서’, 27%는 ‘화면 집중을 위해서’ 자막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자막을 켜고 콘텐츠를 시청하는 이유
출처: 프레플리(Preply)

한편, 국내에서도 자막을 활용한 시청 트렌드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OTT 콘텐츠 시청 시 한글 자막과 함께 보는 것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29.4%로 나타났으며, TV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한글 자막을 선호한다는 응답도 20.6%를 기록했다(방송통신위원회,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2024.12.30). 이는 전년 16.8% 대비 약 4%p 증가한 수치로, 자막 활용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막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자막은 청각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음질이 좋지 않거나 발음이 불명확할 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프레플리(Preply)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는 자막으로 인해 콘텐츠의 시각적 요소에 집중하지 못해 중요한 내용을 놓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22%는 자막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도 자막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영화 커뮤니티 디프라임(DPrime)에서는, 배우들의 대사만 나오는 자막을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불편함이 제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국내 작품 시청 시 자막 사용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사례가 있었다.

출처: 디프라임(DPrime)

시청자 경험 개선을 위한 넷플릭스의 노력

넷플릭스는 미국 내 스트리밍 콘텐츠 일부에 한해 청각장애인용 자막(Closed Cations, CC)을 2010년부터 제공해왔다. 2023년에는 자막의 크기와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TV 자막 설정 기능'을 도입하여 시청 편의성을 강화하였다. 해당 기능은 자막의 크기를 작게, 중간, 크게 총 3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자막의 스타일을 '그림자 효과', '어둡게', '대비', '밝게' 총 4개로 이루어져 있어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추어 자막을 맞춤 설정할 수 있다.

넷플릭스 TV 자막 설정 기능
출처: 넷플릭스(Netflix)

또한, 넷플릭스는  2025년 4월 초에는 PC와 모바일에서 30개 언어 이상 제공되던 자막 기능을 TV에도 적용하여, 시청자들의 시청 환경을 더욱 개선하는 등 다양한 구독자들의 맞춤형 시청 환경을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접근성 제공을 넘어, 다양한 시청자의 선호와 감각에 맞춘 ‘맞춤형 시청 경험’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번 ‘대사 자막’ 기능 역시 자막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며, 시청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변화라 할 수 있다.

OTT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이나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졌다. 즉, 콘텐츠의 이야기 자체만큼이나 그 전달 방식이 시청 경험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막은 더 이상 단순한 번역이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시청자의 감각과 몰입도를 좌우하는 핵심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OTT 플랫폼은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을 보다 정밀하게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넷플릭스의 이번 시도는 접근성의 표준을 넘어, 사용자 중심 설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그동안 ‘청각장애인 자막’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모든 사용자가 동일한 형식의 자막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이제는 개인의 필요와 취향에 맞춰 자막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열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가 넷플릭스에 그치지 않고, 다른 OTT 플랫폼들도 접근성을 '통합'의 문제가 아닌 '개인화된 경험'의 관점에서 풀어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