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받아들인 할리우드 '작가들의 AI동행 실험'
사람처럼 대화하는 생성형AI 챗GPT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 최대 방송 영화 작가 노조인 WGA(Writers Guild of America W.G.A )가 드디어 인공지능(AI)을 받아들였다.
WGA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대본을 쓰는 것을 일정 부분 허용키로 했다. 다만 작가 크레딧(Writing Credit)을 나누거나 스트리밍이나 VOD로 방송될 때 추가로 받는 잔여 수익 레지듀얼(residuals)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전미 작가 노조는 작품 서술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챗GPT, 구글의 바드(Bard) 등이 인간을 대체하는 수준의 글쓰기를 선보이자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하는 작가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AI는 작가가 아니다.]
이와 관련 WGA는 2023년 3월 20일 AI 규제 등을 포함한 주요 요구 사항(pattern of demands)을 놓고 회원 투표를 실시했다. 이 요구사항은 WGA가 주요 스튜디오와 작가들에 대한 대우와 보상을 협의할 때 적용된다. 현재 조약은 2023년 5월 1일 효력이 끝난다.
주요 요구 사항에는 스트리밍 서비스 전송에 대한 작가 수익 배분 확대, 미니 시리즈 확대 현상, 에피소드 집필 시 추가 시간에 대한 보상(span protection) 등이 포함됐다. WGA에는 TV와 영화 작가 1만 1,000명이 속해있다.
특히, AI의 경우 일부 예상과는 달리, WGA는 AI 기술을 창작에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AI를 창작의 보조제로 인정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가조합은 GPT이용에 대한 인공 지능에 추가 수당이나 작가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고 특히, 재방 추가 보상(레지듀얼)에 영향이 없다면 사용여부는 작가 개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또 스튜디오의 경우 AI가 생산한 스크립트를 작가에게 전달해 수정하거나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이때 인간 작가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창작자로 간주된다.
[AI는 각본 창작의 툴]
실제, 이번 제안은 AI를 작가라기 보다 각본의 창작툴(기획안이나 연필과 같은)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WGA는 작가들이 AI 서비스 기업의 크레딧 제공 요청에 휘말리지 않고 테크놀로지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번 조항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도움 없이 모든 대본이나 각본을 작성했다면 이는 창작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고 WGA는 밝혔다. WGA는 3월 20일부터 이 조항을 두고 제작자 협회(the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와 적용 여부를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AMPTP가 이 아이디어를 수용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WGA는 AI 생산 작품에 대한 규정도 명확히 했다. AI생산 작품이 단순히 ‘문학적 자료(literary material)’이나 ‘원천 자료(source material)’로 인정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간단히 언급했다. 이들 용어는 작가 크레딧을 할당할 때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또 이는 향후 수익이나 추가 수당 배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문학적 자료(Literary material)는 WGA가 작가로 인정할 때 만들어지는 최소 기본 협약의 기초 용어다. 쉽게 말해 스토리, 각본, 대본, 스케치 등 작가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만약 AI프로그램이 문학적 자료를 만들 수 없다면, 특정 프로젝트에서 ‘작가’로 인정 받을 수 없다.
원천자료(Source material)는 소설, 연극, 잡지 기사와 같은 것들을 말하며 이는 드라마 등을 만들 때 대본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각본(Screenplay)이 원작이 있다면 ‘원작 각본(Original Screenplay)’로 인정 받지 못한다. 이 경우 작가는 집필 크레딧(written by credit)이 아닌 각색(screenplay by credit) 크레딧만 받을 수 있다. 집필 크레딧을 받으면 작가는 잔여 보상금(full residual)의 전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원작이 있고 각색 크레딧의 경우 리지듀얼의 75%만 수령할 수 있다.
조합은 챗GPT가 원천 자료를 생산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작가가 AI가 쓴 스토리를 각색해 완전한 집필 크레딧(written by” credit)’을 받는 길을 열어줬다.
조합이 작가들의 창작에 AI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어쩌면 고육지책으로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AI의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수만개의 사례를 참조하는 대량 언어 모델(LLM)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표절로도 보기 쉽지 않다.
또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AI 집필에 대한 기준을 시급히 만들 필요성도 있었다. 단순 교양 프로그램이나 퀴즈쇼 등에는 AI를 이용한 대본 집필과 인간 작가의 창작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 AI작가는 이미 인간의 단순 글쓰기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국의 영화 배우 노조(SAG-AFTRA) 역시, AI 배우에 대한 기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AI가 만들어 내는 자신들의 또다른 아바타의 경우 별도 인격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또 배우들은 경우에 따라 이미지나 목소리, 유사성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제작자 협회와 근무 조건에 대한 협상 중인 WGA는 향후 2주 동안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파업을 진행할 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WGA 제안서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인공지능과 유사한 기술: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유사한 기술에 의해 생산된 서면 자료가 MBA가 적용되는 프로젝트의 원천 자료 또는 문학 자료로 간주되지 않도록 제공한다."
(ARTIFICIAL INTELLIGENCE AND SIMILAR TECHNOLOGIES: Provide that written material produc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programs and similar technologies will not be considered source material or literary material on any MBA-covered project.)
사실 조합의 트윗을 보면 AI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AI기술을 고려하기 보단, AI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주목했다. (AI가 어떻게 "고려"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는지) 결국 AI는 창작을 위한 원천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리밍, 케이블TV 등을 통한 레지듀얼(버라이어티)_
[스트리밍이 더 중요해지는 미국 작가들]
미국에서 세금 당국에 수익을 신고하는 작가 숫자는 2019년 5,396명까지 증가하다, 팬데믹 이후 4,900명 대로 다시 떨어졌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작가들의 수익이 늘어나다, 다소 주춤해진 것이다.
현재 미국내 수익을 내는 작가 숫자는 2017~18년 수준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 TV방송 시장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급격히 옮겨감에 따라 작가들의 수익 구조도 바뀌고 있다.
과거 작가들은 TV본방을 통해 얻는 전송료, 케이블TV 등을 통해 방송되는 ‘재방 전송료’가 대표적이었다. 케이블을 통해 얻는 재방 수익은 레지듀얼(Residuals)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트리밍 시대가 되자, 극장, DVD, 케이블 유통을 통한 리지듀얼은 크게 낮아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2~2021년 사이, 극장 개봉작인 31%가 떨어졌다.
대신 오디언스들의 시청이 스트리밍으로 넘어가자, 이와 관련한 ‘스트리밍 레지듀얼’이 더 중요해졌다. 미국에서 작가들이 스트리밍 서비스 전송을 통해 받은 레지듀얼은 2020년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작가들은 스트리밍 서비스 레지듀얼은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이중요한 것은 스튜디오 역시 마찬가지여서 양측간 이견은 잘 좁혀지지 않고 있다.
TV가 아닌 스트리밍 오리지널 콘텐츠도 갈등의 대상이다. 예전 할리우드 TV드라마는 시즌 당 22편 정도였지만, 스트리밍 오리지널은 많아야 12편에 그친다. 그러나 동시에 각 에피소드 길이는 더 길어졌다. 에피소드 당 비용을 받는 작가들은 더 적은 원고료를 받고 일은 더 많이(편당 길이)해야 하는 구도가 된 것이다. 때문에 일부 드라마 제작자들은 더 많은 일을 하고 수익은 더 낮아졌고 불평하고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 수익이 악화된 스튜디오들은 제작비를 올려주기는 커녕,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디즈니는 2023년 2월 55억 달러의 비용을 줄이고 7,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혔다. 디즈니+의 적자가 심하고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 매출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는 2022년에 이미 상당수의 인력을 감축했고 4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줄었다. 아울러 NBC유니버설 또한 광고 시장 침체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크리스 케이저(Chris Keyser) WGA 협상단 공동 대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수익을 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수년 내 이익을 발생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이번에 계약을 하면 2026년까지 조항을 수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작가들은 스튜디오들이 수익을 발생시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은 왜 노조를 만들었나]
할리우드에서 제작사와 작가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할리우드 작가들은 스튜디오들이 자신들을 ‘이류 시민’ 취급을 한다고 불만을 터뜨려왔다. 감독이나 배우들에 비해 그들의 예술적 기여를 평가절하하고 보상도 형편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감정들을 그들을 노조 아래 뭉치게 했다.
2019년 영화와 TV작가들은 그들의 대행사들을 대거 해고했다. 작가와 일하면서 동시에 스튜디오의 업무도 대행한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WGA가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는 이 사건으로 작가들의 연대는 더 강해졌다.
22개월 간의 파업 끝에 기획사들은 작가들의 요구상황을 대거 반영했다. 밀켄 연구소(Milken Institute)에 따르면 2007년 파업 기간 동안 수만 명의 연예계 종사자들이 휴직 상태 였으며 이로 인해 로스앤젤레스 경제는 2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