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미래...AMC가 꺼낸 카드는 '좌석 차등제'
다른 예술과 달리, 영화의 매력은 ‘평등’이었다. 모든 영화팬들은 적어도 극장 내에선 같은 관람료를 내고 동일한 감동을 느꼈다. 더 비싼 가격의 고급 상영관이 있지만 이는 차별이 아닌 차이었다. 고급 상영관에서는 더 아늑한 관람 환경이 주어진다. 요일이나 시간, 영화의 종류에 따른 차이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음악 콘서트나 브로드웨이 공연의 티겟 가격 차등도 ‘경험의 차이’다. 인간이 내는 아날로그 음색을 더 생생하게 느끼려면 보다 더 다가가야 한다. 자본주의는 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지불하는 비용의 차등으로 정리한다.
그러나 디지털 뷰파인더를 통해 영화의 차별은 다른 문제다. 미국 AMC가 영화 불평등을 선언했다. 팬데믹 이후 현장 이벤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가운데 글로벌 1위 극장 체인 AMC가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좋은 화면 좋은 음질에서 영화를 즐기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이는 팬데믹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급격하게 빠졌던 극장 이용객은 아직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AMC, 업계 최초로 차등 좌석제 실시]
AMC는 2023년 2월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좌석 위치에 따라 티켓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음악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브로드웨이 연극 등과 같이 영화 관람객들도 극장 좌석을 차등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시청에 방해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좌석에서는 보다 낮은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일 가격에 자율좌석제에 익숙한 미국인 입장에서는 충격적 정책일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은 뉴욕, 시카고와 AMC본사가 있는 캔자스 시티에서 먼저 실시된다. AMC는 2023년 말 미국 전체 극장에 확대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AMC 좌석 가격 옵션은 3종류다. 가장 일반적인 ‘스탠다드 사이트라인(Standard Sightline)’, 앞줄 등 보다 좋은 시야를 가진 ‘밸류 사이트라인(Value Sightline)’, 세번째 옵션은 ‘프리퍼드 사이트라인(Preferred Sightline)’으로 보통 극장 좌석 중간이고 일반 좌석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AMC극장 구독 모델인 ‘AMC 스터브 A리스트(AMC Stubs A-List)’ 구독자들은 무료로 프리퍼드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좌석 위치와 가격은 예매시 온라인과 오프라인 극장에 공지된다. 다만 모든 티켓이 5달러로 할인되면 화요일에는 차등 좌석 요금제가 실시되지 않는다.
AMC극장 부사장이자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인 엘리어트 햄리쉬(Eliot Hamlisch)는 성명에서 “AMC 차등요금제 적용은 음악 콘서트 등 다른 이벤트처럼 관람객들에게 영화의 가치를 높여주는 또 다른 방법”이라며 “AMC의 모든 좌석은 영화 관람객들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준다”며 “하지만 관람객마다 극장에 두는 의미가 다르다. 관람객들은 특별한 좌석에 의미를 두고 다른 관객은 극장을 가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AMC는 모든 영화팬들의 기회에 호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이상 평등하지 않은 영화…가격 인상 신호탄]
AMC가 ‘영화팬’들의 다양한 기호에 대응한다고 했지만 사실 ‘좌석 차등화’는 티켓 가격 인상에 다름 아니다. AMC는 차등 가격제 시행으로 두 가지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정 좌석제 시행(미국 대부분 극장은 자유 좌석제다.)으로 인한 가격 인상과 구독 모델 확대(구독 모델 가입시 우선 좌석 무료)다. 어떤 방향이든 AMC가격 상승을 노릴 수 있다.
북미 지역 극장은 팬데믹 이후 경영 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위 극장 체인인 리걸 시네마(Regal Cinemas)를 운영하고 있는 씨네월드(Cineworld)는 2022년 10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고 최근 39개 지점을 폐쇄했다. AMC는 북미 지역에 600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극장의 10% 수준으로 AMC의 고전은 북미 지역 극장의 어려움과 같다. 극장 방문에 대한 소비자들의 안도감도 아직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50% 내외다.
영화는 이제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경영 위기에 빠진 극장들은 영화 관람 가격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등 부과해왔다. 2022년 개봉한 로버트 패터슨의 영화 ‘배트맨(“The Batman)’의 경우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보다 관람비용이 1~2달러 높았다. 고객들의 수요가 많은 작품에 대한 일종의 프리미엄 비용이다. AMC는 최근 개봉한 코미디 영화 ‘80 for Brady’의 모든 시간에 성인 요금을 부여했다.
영화관의 생존 노력은 티겟 가격 차별화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서비스 등장 이후 영화관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물의 길’이 글로벌 기준 역대 3위 박스 오피스(2월 5일 기준 15억 3,800만 달러, 전체는 21억 7,440만 달러)올랐다. 이로써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의 영화 ‘타이타닉(Titanic)’의 기록을 25년 만에 스스로 깼다. 또 다른 기록 경신은 시간 문제다.
그러나 이 사실이 영화 보는 관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사인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매버릭’ 등 이른바 관람의 가치를 주는 대작 영화에만 관객이 몰릴 수 있다. EntTelligence에 따르면 ‘아바타’의 경우 미국 관람 티켓 판매의 30%가 프리미엄 포맷(3D나 아이맥스, 스크린X)에서 이뤄졌다. 이에 아바타의 평균 티켓 가격은 17.80달러였다. 2022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들의 프리미엄 포맷 판매 비율은 평균 14%였고 평균 티켓 가격은 15.76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