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는 왜 워너 브라더스 인수를 준비하나...미디어 시장 혼란기에 펼쳐지는 M&A (하)

(상)편에서 살펴본 대로 파라마운트의 WBD 인수 추진은 단순히 가입자 수 확대 차원이 아니다. 이는 콘텐츠 제작비 폭등, 광고 시장 재편, 글로벌 OTT 경쟁 심화라는 3중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시장 독점화가 가져올 부정적 파급도 크다. 전통적으로 할리우드는 다양한 메이저와 독립 스튜디오가 경쟁하며 창작자에게 다채로운 기회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대형 합병이 거듭되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바이어(BUYER)’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경쟁사 임원은 이번 M&A로 인해  “창작자에게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가 20%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이는 독립 감독, 신예 제작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 콘텐츠 다양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

글로벌 제작비 인상 요인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콘텐츠 제작비는 급격히 올랐다. 인기 배우·감독의 몸값 상승, 세트·특수효과 비용 폭증, 인공지능 기술을 포함한 후반 작업 비용 증가가 주원인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각각 연간 150~170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의 두 배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 경쟁이 과열되면서 콘텐츠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제작 비용이 인상된 탓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콘텐츠의 공급과 수요가 글로벌화 됐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이다.

[넷플릭스 제작비 추이(2016~2025년)]

연도 제작비 (미국 달러) 한화 환산액 (약) 전년 대비 증감률
2016년 6.88 Billion 7조 9,860억 원 -
2017년 8.91 Billion 10조 780억 원 +26%
2018년 12.04 Billion 14조 4,800억 원 +44%
2019년 13.90 Billion 18조 700억 원 +25%
2020년 11.80 Billion 13조 9,500억 원 -23%
2021년 17.90 Billion 20조 4,900억 원 +47%
2022년 16.84 Billion 21조 7,500억 원 +6%
2023년 13.00 Billion 16조 9,900억 원 -22%
2024년 (예상) 17.00 Billion 23조 2,000억 원 +31%
2025년 (예상) 18.00 Billion 25조 0,000억 원 +6%

(출처 : Investing.com, The Verge, FRED, CEIC Data, Exchange-Rates.org 종합 / 분석: 다이렉트미디어랩)

따라서 파라마운트-WBD가 합병할 경우, 대규모 공동 제작·배급 구조를 활용해 제작비 상승 압력을 다소 완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기술이 상용화 되면서 현지화, 가상 프로덕션 기술, 글로벌 공동 제작 모델을 확대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OTT 시장과의 비교

한국 시장 역시 광고 기반 모델 도입과 제작비 부담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티빙은 2024년 국내 OTT 최초로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며 수익 다변화를 시도했다. 쿠팡플레이는 2025년 6월부터 “광고 시청”을 조건으로 일반 회원에게 무료 이용권을 제공하며 가입자 확대에 나섰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도 광고 수익과 제작비 조달을 위한 혁신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파라마운트-WBD 합병은 한국 OTT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글로벌 광고·제작 단가가 오르면, 국내 제작사와 플랫폼도 협력·공동제작을 통해 대응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과 기술 혁신

파라마운트는 이미 3,000명 감축, 부동산 매각, AI 번역·더빙 기술 도입을 통한 비용 절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WBD와의 결합 후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스트리밍 확산에 필수적인 현지화(Localization) 분야에서 AI의 활용은 결정적이다. 언어·문화 장벽을 신속히 넘을 수 있어 글로벌 진출 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비용 절감 일변도가 콘텐츠 퀄리티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HBO의 프리미엄 드라마,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구조조정으로 타격을 받는다면, 오히려 브랜드 가치가 손상될 위험도 있다.

정치·규제의 불확실성과 ‘차세대 메이저’의 상징성

정치권 변수는 여전히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엘리슨과 가까운 관계로 규제 우회 가능성이 있으나, 민주당은 강력히 반대한다. 미국 법무부와 FCC는 CBS와 CNN 같은 뉴스 채널, 스포츠 중계권 등 중복 영역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인수 승인을 위해 채널 매각이나 사업부 분리 조건이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엘리슨은 스카이댄스-파라마운트 합병과 WBD 인수 추진을 통해 단숨에 할리우드의 권력 최상층으로 도약했다. 2025년 미디어 M&A를 통해 엘리슨 가문이 미디어(Media)와 테크(Tech) 양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번 M&A 추진은 WBD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에게는 ‘전략적 퇴로’가 될 수 있다. 수 년간 부채 감축과 구조조정으로 비판을 받아온 자슬라브가 높은 인수 가격에 회사를 넘길 경우, “행복한 은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혼란기 속 M&A 러시

결국 이번 인수 추진은 미디어 산업이 혼란기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극장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회복세가 둔화됐고, 케이블은 지속적 가입자 감소를 겪고 있다. OTT만이 성장 동력으로 남았으나, 이 또한 무한경쟁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린다. 따라서 대규모 M&A는 생존을 위한 필연적 전략이 되고 있다.

한국 미디어 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글로벌 OTT의 합종연횡 속에서 국내 기업은 공동 제작, 해외 협력, 광고 기반 모델 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파라마운트-WBD 인수전은 단순한 미국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한국 미디어 시장에도 직간접적 파급을 미칠 것이다.

파라마운트의 WBD 인수 추진은 규모 확보, 제작비 인상 대응,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산업적 논리에 기초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채 부담, 규제 리스크, 창작 생태계 위축이라는 위험 요소도 크다.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시도는 미디어 산업이 더 이상 ‘독립된 스튜디오 시대’가 아니라, 초대형 자본 결합과 M&A 중심으로 재편되는 전환기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