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터트린 관세 폭탄에 저항하는 호주... 미국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지역 콘텐츠 의무화' 정책 추진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세계 증시가 폭락한 가운데, 호주는 이에 맞서 미국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지역 콘텐츠 의무화 정책’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부분 국가에 1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호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후, 호주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는 18개월 이상 도입을 미뤄왔던 로컬 콘텐츠 할당 공약을 두 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호주의 방송 제작자 단체인 스크린 프로듀서스 오스트레일리아(Screen Producers Australia, SPA)는 트럼프의 관세 발표 이전에 설문조사를 통해 콘텐츠 의무 규제를 지연하는 것이 호주 영상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설문에 따르면, 170개 이상의 제작 프로젝트가 무산되거나 지연되었으며, 약 15,000건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0억 호주달러(약 6,300억 원)에 달하는 예산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리밍 규제와 스크린 사업 전망에 대한 설문 응답
(출처 : 호주 SPA)

SPA 대표 매튜 디너(Matthew Deaner)는 “지역 콘텐츠 규제가 지연되면서 수많은 투자가 좌초됐다”며, “이는 단순한 산업 문제를 넘어, 호주의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 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MPA)는 2004년 체결된 '호주-미국 자유무역협정(AUSFTA)'의 틀 안에서 지역 콘텐츠 의무화가 ‘FTA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호주 정부의 규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총리는 “호주 이야기들이 호주 스크린에 계속 존재해야 한다”며, 지역 콘텐츠 보호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호주의 이 같은 정책 추진은 국제적으로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유럽과 북미 여러 국가들이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해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콘텐츠 의무화 정책을 법제화한 바 있다.

프랑스는 2021년에 SMAD(Service de Media Audiovisuels à la Demande) 법령을 발표하면서,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해외 플랫폼이 프랑스 내 수익의 20~25%를 자국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EU의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AVMSD)’에 기반하며, 유럽 문화 정체성 보호의 대표적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프랑스 내에서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투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고 프랑스 규제기관 ARCOM이 발표했다(2024.11).

덴마크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2% 세금을 부과한다. 이 세금은 자국 영화 및 공공 프로그램 제작에 사용하게 된다. 스위스도 유사한 방식으로 4%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해당 세금은 스위스 내 다큐멘터리 및 TV 콘텐츠 제작에 활용된다.

캐나다는 ‘온라인 스트리밍 법안(Online Streaming Act)’을 통해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가 캐나다 콘텐츠 제작에 일정 부분 기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해외 플랫폼이 캐나다 콘텐츠를 추천 알고리즘에 반영하도록 권고하기도 한다. 캐나다의 온라인 스트리밍 법안은 기존의 방송법을 디지털 환경에 맞게 확장한 이 법안으로 2022년 발의 된 후, 2023년 4월 통과되어 현재 적용 중이다.  

이처럼 호주, 프랑스, 캐나다 등 여러 국가의 움직임은 자국의 문화주권 강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미국 기반의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가는 가운데, 자국 스토리텔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한국 콘텐츠 제작과 수급에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규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 호주, 프랑스, 캐나다처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를 보완할 필요는 있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은 갈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당연히 콘텐츠를 수급할 때도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주장할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갈 수밖에 없다. 한국도 미국 이외의 나라들의 이러한 흐름을 주시하면서 자국 콘텐츠 생태계 보호와 글로벌 스트리밍 규범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