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비즈니스]‘허리띠를 졸라매는 미국 뉴스룸’...그러나 디지털 투자는 지속
(같은 기사가 https://junghoon.substack.com에 실려 있습니다. )
지난 2022년 10월 말 글로벌 1위 뉴스 채널 CNN에 날아든 이메일은 충격적이었다. 4월 디스커버리와 합병해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를 모기업으로 둔 CNN이 예산을 삭감하고 정리해고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CNN CEO 크리스 리히트는 직원에게 보낸 메모에서 “글로벌 경제 전망에 우려가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위험을 장기 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경기불황에 움츠리는 미국 뉴스룸]
2022년 11월 15일 알리신 카메로타(Alisyn Camerota) 사회로 시작된 CNN 타운홀 미팅에서 시종 일관 분위기가 무거웠다. 리히트 CEO는 “정리해고는 12월에 각 부문별로 이뤄질 것이다. 미디어 기업들이 어려운 겨울을 준비해야 함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뉴스부문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과 고환율, 고금리에 미국 뉴스룸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구조조정은 물론 경비 절감 정책이 뉴스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가 끝난 뒤 2023년에는 특별한 대형 뉴스 이벤트가 없다는 것도 뉴스 미디어들은 움추리게 만드는 요소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2024년에 벌어진다. 이에 2023년 미국 뉴스룸의 취재 활동은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Disney)도 불황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22년 11월 11일 당시 디즈니 CEO였던 밥 체이펙(Bob Chapek)은 신규 투자를 동결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출장을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CEO가 밥 아이거(Bob Iger)로 교체되고 나서 이 계획은 수정됐지만 디즈니 내 위기감은 여전하다.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ABC뉴스(대표 킴 갓윈)도 영향을 받았다. 킴 갓윈(Kim Godwin) 대표는 2022년 11월 14일 편집회의에서 모든 간부들에게 경비 절감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메이저 뉴스룸들은 콘텐츠 지출과 취재비, 출장비 지출을 통제하고 있다. 불가피한 내용이 아니면 줌(Zoom) 등과 같은 비디오 서비스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현재까지 정리해고를 밝힌 미디어는 CNN, 디즈니,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정도지만 앞으로 계속 증가할 수 있다.
마크 펠드스테인(Mark Feldstein) 매릴랜드 대학 방송 저널리즘 부문 학장(chair of the broadcast journalism department at the University of Maryland)은 할리우드리포터와 인터뷰에서 “뉴스룸 예산 삭감과 해고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다”며 “내부 분위기는 아주 안좋아질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CNN과 ABC뉴스에서 탐사 보도를 이끈 바 있다.
[NBC유니버설, 10년 근속 정리해고 대상]
NBC유니버설은 57세이상 10년 근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early retirement packages)을 실시하고 있다. 퇴직 대상에는 케이사르 콘데(Cesar Conde)가 이끄는 NBC뉴스그룹(NBC News Group)도 포함돼 있다. 명예퇴직은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받아들이는 지가 관건이지만,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특히, 이어지는 직원 조직 구조조정의 전조로도 알려져 있다. CNN의 경우 2014년(당시 모회사였던 터너의 20202 플랜에 따라) 130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전체 정리해고 인원은 170명이었다.
CBS뉴스의 모회사 파라마운트 글로벌(Paramount Global)도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2022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CFO 네이븐 초프라(Naveen Chopra)는 “4분기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산절감과 지출 축소도 상당수준 예상된다”고 말했다.
뉴스룸의 구조조정은 통상 인원 감축, 신규 채용 중단 등 인력 부문과 데일리 뉴스(daily News)가 아닌 다른 콘텐츠와 관련 조직을 없애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소비자 담당, 해외 총국 폐쇄, 다큐멘터리, 탐사보도 부문 해체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구조조정에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지만 상당수는 취재 인력보다는 영상 촬영, 프로듀서 등 뉴스 제작진과 앵커에 집중된다.
[CNN, 2022년 12월 초 정리해고]
2022년 5월 CNN의 새로운 CEO가 된 크리스 리히트(Chris Licht)는 11월 15일 타운홀 질의 응답 세션에서 CNN 운영 방향을 계속 질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가졌던 올 핸드 미팅에서 리히트는 ‘대규모 집단 해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에 리히트가 모회사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의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아바타가 아니냐는 심한 말도 나왔다. 그러나 리히트는 “이번 구조조정은 100% 나의 판단이며 상황은 언제든지 변한다”며 “내가 부임하기 전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설명했다.
CNN직원들도 구조조정의 불안에 떨고 있다. 자슬라브는 합병 후 주가가 반토막나고 적자가 심해졌다며 30억 달러를 줄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CNN도 조직 감축에 포함될 수 밖에 없다.
리히트 CEO는 정리해고 시점을 12월 초로 확정해 “직원들은 퇴직까지 시간이 60~90일(90 Notice) 주어질 것이며 임원들은 1월 임금과 퇴직금(Severance)이 지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CNN 보도부문이 받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11월 현재 CNN은 미국과 글로벌에서 4,600명 가량의 직원(미국 1,200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구조조정은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5월 리히트가 CEO로 부임할 때 약 200~300개 자리 정도가 공석이다. 하지만, 그는 빈자리를 채우는 채용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히트는 뉴스 부문(new gathering) 등 대규모 조직 개편도 예고했다. 이와 관련 CNN은 그동안 분리 운영됐던 TV와 디지털 뉴스 부문을 하나의 조직(Single Unit)으로 통합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심으로 TV와 디지털 뉴스 구분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 CNN은 아침뉴스, 프라임타임, 디지털에 보다 집중하고 국제 뉴스를 더 많이 제공할 계획이다.
2022년 11월 15일 WBD의 데이비드 자슬라브는 컨퍼런스에서 만약 광고 시장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2023년 수익 목표인 120억 달러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20억 달러 역시 2022년 초 130억~140억 달러에서 하향 조정한 수치다. 자슬라브는 또한 스트리밍 서비스 HBO MAX가 2021년 3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예상보다 더 큰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도채널인 CNBC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 일부를 조정했다. 2020년부터 방송 중이던 쉐퍼드 스미스의 ‘The News With Shepard Smith’를 폐지한 것이다.
또 토요일 흑인 시청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주말 아침 프로그램 ‘The Cross Connection’도 편성에서 제외했다. 예산 절감을 위한 프로그램 조정 후 내부 직원들을 MSNBC 대표인 라시다 존스(Rashida Jones)에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이 중단된 프로그램들이 아직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뉴스에 대한 투자는 이어가]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스트리밍 뉴스에 대한 투자’다. 디지털은 여전히 미국 뉴스룸 투자의 최우선 순위다. 불황에도 많은 뉴스룸들이 스트리밍 뉴스에 대한 투자는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CBS뉴스는 스트리밍 오리지널 뉴스 콘텐츠를 대거 편성했고 ABC뉴스 역시 ‘ABC뉴스 LIVE’를 강화하고 있다. CNN은 CNN+를 폐쇄이후 디지털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오디오 포맷도 늘리고 있다. 11월 17일에는 코디 오디쉬가 진행하는 인터뷰 팟캐스트도 런칭했다.
폭스 뉴스(Fox News)는 유료 스트리밍 뉴스 서비스 ‘폭스 네이션(Fox NATION)’에 더 많은 뉴스를 편성했다. NBC뉴스 역시, NBC NEWS NOW에 뉴스룸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다.
CNN도 CNN디지털에서는 정리해고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CCNN디지털 부문은 2022년 매출 10억 달러(1조 380억 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4월 운영 32일만에 폐쇄된 유료 구독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의 매출도 디지털에 포함돼 있었던 만큼 목표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CNN의 전체 이익(profitability)도 11억 달러가 예상됐지만 최근 시청률 하락 등으로 10억 달러 이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스트리밍 뉴스 서비스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사업자도 있다. 2015년부터 스트리밍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CBS뉴스는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고 ‘스테이 튠드(Stay Tuned)’ 등 다양한 포맷의 스트리밍 뉴스를 선보이고 있는 NBC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스트리밍 뉴스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뉴스 미디어들을 볼 때 오는 2024년 대통령은 선거의 싸움은 TV가 아닌 디지털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CNN은 보다 더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 리히트는 취임 후 ‘디지털 뉴스 전략’에 대해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CEO의 무관심은 결국 시장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