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디즈니의 변심, 밥 아이거의 귀환
미국 디즈니(Disney)의 전설 밥 아이거(Bob Iger) CEO가 돌아왔다. 2020년 2월 팬데믹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떠나겠다고 나간 CEO다. 2년 만에 컴백했는데 현재 CEO인 밥 체이펙(Bob Chapek)에겐 재앙이지만, 회사 100년을 앞두고 위기를 겪고 있는 디즈니에게는 수렁에서 건져줄 구세주다. 밥 체이펙의 경질 이유는 3분기의 대규모 적자다. 디즈니는 2022년 3분기(회계분기 4분기) 스트리밍에서만 15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디즈니 이사회는 2022년 11월 20일(일) 저녁 긴급 회의를 열고 밥 아이거의 귀환을 전격 승인했다. 디즈니의 실적 악화와 정리 해고 등은 C레벨 교체 소문이 돌았지만, 아이거의 복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버라이어티는 이런 충격적 결정을 “1997년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떠난 뒤 12년 만에 돌아왔던 사건”에 비유하기도 했다.
디즈니 이사회 의장은 수잔 아놀드(Susan Arnold)는 성명에서 “우리는 오랜 기간 디즈니를 위해 일했고 특히, 팬데믹 시절 시계가 제로인 상황에서 회사를 잘 이끌어준 밥 체이펙에게 감사를 표한다”며 “그러나 미디어 사업 구조 개편으로 복잡성이 더해지는 지금, 밥 아이거를 회사를 이끌 적임자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놀드는 6월에는 ‘체이펙의 3년 연임’을 의결한 바 있다.
[임원들도 경악한 아이거의 복귀]
CEO 교체 소식은 디즈니 임원들에게 충격이었다. 언론 보도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인터넷 사기나 피싱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모두 경악했다. 20일 대부분의 디즈니 최고 임원들은 LA다저스 스테이디움에서 진행된 엘튼 존 고별 공연 프리쇼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 쇼는 디즈니+에서 라이브 스트리밍됐다. 1월 20일 오후 6시 45분 아이거 복귀 뉴스가 터졌을 때 디즈니와 ABC의 경영진들도 ABC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생방송을 위해 할리우드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 모여있었다. 동시에 1만 9,000명 디즈니 직원들에게도 이 소식이 E메일을 통해 전달됐다. 소식을 접한 임원들은 자리를 잇달아 떴다.
체이펙의 경질은 3분기 충격적인 실적 발표 이후 전격 단행 됐다. 디즈니는 미국 증권가의 예상에 못미치는 실적을 냈다. 3분기 실적에 따르면 디즈니의 스트리밍 사업부는 14억 7,000달러의 손실을 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손실보다 배(8억 달러)가 많은 수준이며 당초 팩트셋이 예상한 수치보다도 38%가 많다.
2019년 11월 디즈니+런칭이후 디즈니는 스트리밍 사업에서 80억 달러(11조 160억 원)의 돈을 날렸다. 가입자는 1,210만 명이 증가했지만 실적 발표 다음날 디즈니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디즈니는 2022년 11월 8일 9월 말 분기 실적 발표 후다음날 주가가 13%나 하락했다. 2021년 9월 이후 가장 큰 하루 하락폭이며 2021년 5월 최고점 이후 43%가 떨어져 주가도 가장 낮았다. 디즈니의 주가는 주당 100달러 미만으로 90달러까지 떨어졌다.
디즈니의 주가 하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들이 말한 미래(스트리밍)가 그들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2019년 11월 스트리밍 서비스 진출 이후 상당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 투자가 이익을 갉아먹었다. 미디어 조사 기업 모펫내탄슨(MoffettNathanson)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내탄슨(Michael Nathanson)은 “디즈니 실적 분석이 예측과 달라지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스트리밍 서비스 실적 저조와 실시간 채널의 하락이 큰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디즈니는 심각한 주가 하락으로 헤지 펀드(hedge-fund)의 공격을 당했다. 트리안 펀드 매니지먼트(Trian Fund Management)는 2022년 11월 초 디즈니 주식 8억달러 이상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디즈니가 충격적인 실적 발표한 다음날(9일)이다. 아직은 5% 이하의 지분이어서 큰 영향력이 없지만, 경우에 따라 디즈니의 영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넬슨 펠츠(Nelson Peltz) 등이 설립한 이 행동주의 펀드는 디즈니 이사회 자리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디즈니에게 영업이익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라는 요구와 함께 말이다.
또 다른 행동주의 투자자 댄 롭(Dan Loeb)의 투자 회사 ‘ Third Point LLC’도 지난 2022년 8월 디즈니 주식을 대량 구매했다고 공개하며 체이펙 CEO에게 “비즈니스 전략 변경’을 요구한 바 있다. ESPN을 매각하고 비용 절감, 이사회 교체 등을 요구했다. 한달 뒤 요구를 철회했지만 디즈니 입장에선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요청이다.
[아이거의 재등장 후 디즈니의 미래]
아이거는 2020년까지 15년 동안 디즈니를 경영했다. 아이거 재임 시절 디즈니는 콘텐츠 회사에서 콘텐츠 플랫폼 기업이 됐다. 마블, 픽사, 루카스필름 등을 인수하며 글로벌 1위 지적재산권(IP) 회사로 디즈니를 변모시켰다. 물론 폭스로부터 21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사들인 것은 디즈니를 범접할 수 없는 세계 1위 미디어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거를 승계한 체이펙은 이런 영광이 부담이었다. 인수 당시부터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경영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거는 복귀 성명에서 “나는 이 위대한 회사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며 이사회로부터 CEO로 복귀하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기쁘다"며 “디즈니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브랜드, 프랜차이즈들은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존재하며 특히 직원들에게도 자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독보적이고 대담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창의적인 우수성에 집중할 것”이라며 “상황이 어렵지만 회사를 다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경질된 밥 체이펙은 특별한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 디즈니에서 30년을 근무한 밥 체이펙 전 CEO는 테마파크, 소비자 제품, 홈 엔터테인먼트&유통 등 디즈니의 주요 부처를 모두 거쳤다. 그러나 CEO에 취임한 지 3년도 안돼 자리에서 물러나는 불명예를 안았다.
[위기 대처에 미숙한 체이펙, 결국 사임]
팬데믹 시절 취임한 밥 체이펙은 취임 초기부터 갈등을 빚었다. 테마파크에 오래 근무했지만 콘텐츠 비즈니스 정서에 취약했다. 2021년 여름 디즈니는 마블의 ‘블랙위도우(Black Widow)’를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동시 공개했지만, 이 일로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과 법정 소송까지 갔다. 스트리밍으로 인한 극장 개봉 수익 감소로 요한슨이 받을 성과 보상금(극장에 최적화)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슨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과욕’이라는 공개 성명을 내 A급 배우들과 할리우드의 큰 반발을 샀다. 계약상의 권리를 주장하는 배우를 맹목적으로 비난한 체이펙에 대해 할리우드 A급 스타들은 경악했다. 이 모두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결과였다.
또 디즈니+, ESPN+, 훌루 등 스트리밍에 모든 걸 걸었지만, 경기 침체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스트리밍 구독자는 성장했지만, 수익이 너무 악화됐다. 미국 증권가는 디즈니에 등을 돌렸다. 그의 재임 기간 테마파크는 팬데믹으로 거의 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11월 초 미국 경제 방송 CNBC의 짐 크레머(Jim Cramer)는 ‘최악의 실적(“balance sheet from hell)’이라며 밥 체이펙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또 체이펙은 2022년 초에도 큰 실수를 했다. 플로리다가 동성애 교육 금지 법안을 만들었을 때 디즈니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입장 표시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디즈니월드 등 플로리다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과 시민단체들은 반발했고 체이펙 퇴진 운동까지 불러왔다. 결국 체이펙은 사과해야 했다. 위기 대처에 대한 능력 미숙은 체이펙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 디즈니 이사회는 밥 체이펙의 임기를 3년 연장해줬다. 당시 이사회 의장 아놀드는 “밥 체이펙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적합한 리더이며 이사회는 그와 그의 리더십 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부터 회사 실적이 곤두박질 쳤고 주주들의 불만은 체이펙을 사임으로 내몰았다.
한편, 2022년 9월 밥 체이펙은 디즈니의 공식 팬 행사인 ‘D23’에서 디즈니 우산 아래 루카스 필름, 내셔널 지오그래픽, 픽사, ESPN, ABC 등의 콘텐츠의 확장 방향을 공개했다. 밥 체이펙은 2022년 9월 10일 버라이어티에 “향후 100년의 디즈니는 처음 100년의 디즈니보다 위대할 것”이라며 “브랜드의 탄력성은 놀랍다. 마블, 루카스필름, 픽사, ESPN, ABC 등 회사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이펙은 또 오는 2024년 9월까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익을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비전을 실현하지도 못하고 체이펙의 시대는 저물었다.
밥 아이거가 복귀했지만 그 역시 앞길이 장미빛은 아니다. 2019년 11월 디즈니+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가입자 수 증가가 최대 목표였지만 지금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우선이다. 이탈률도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