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서른 살 애플 비전 프로를 향한 희망을 외치다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 가상 공간으로의 확장하겠다는 콘텐츠의 꿈은 오래된 현실이다. 물론 기술도 발전해왔다.

가상현실(VR), 증강 현실(AR), 이제는 현실과 가상공간을 묶은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공간 콘텐츠는 1960년대 첫 실험을 시작했고 컴퓨터가 3D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게 된 1980년대 후반, 가상현실(VR)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터랙티브 증강현실 시스템(first interactive augmented reality system)은 미국 공군에서 나왔다.

1992년 미국 공군 연구소(Air Force Research Laboratory)가 개발한 ‘버추얼 고정 플랫폼(Virtual Fixtures platform)’은 사용자들이 물리적 객체와 가상 객체가 섞인 혼합 현실과 교감할 수 있게 했다.

이어 초대형 디스플레이가 학교에도 진출했다. 2019년 하버드대학에 설치된 61피트 대형 디스플레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헤드 트래킹’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몰입적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이렇듯 증강현실 개념은 이미 30년 전에 개발됐다.

그러나 몰입형 증강현실(immersive augmented reality)은 아직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애플의 비전 프로는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애플 비전 프로가 탑재한 테크놀로지는 업계 최강이다.  12개의 카메라를 달아 손의 움직임을 트래킹하고 눈 움직임을 따라 앱이 클릭된다.

가상 현실과 실사가 섞이는 혼합 현실도 비전 프로에서는 가능하다. ‘카메라 패스쓰루(camera passthrough)’라고 불리는 기술은 디바이스(device)가 정확하게 실사와 버추얼 세상을 정렬(align the real and virtual worlds)시킬 수 있게 한다.

패스스루 기술은 고품질 비주얼(Visual)이 장점이지만 그동안 사용자들의 시야를 제한한다는 점은 오랜 문제였다.

그러나 애플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다.

헤드셋의 유리 표면 뒤 사용자의 눈을 시뮬레이션 해 다른 사람들이 비전 프로 사용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 것이다. 이에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도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이 기술에 대해 애플은 “아이 사이트(EyeSight)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VR헤드셋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증강현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오는 2030년이면 몰입형 안경(immersive eyewear)은 전화기와 유사할 정도의 기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30년 전 개발된 AR기술이 60년이 된 시점에 완전 상용화되는 것이다. 또 이들 개인 정보는 AI로 인한 조작에 취약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AR세계 엑스포(Augmented World Expo)에서는 식당에서 AR글래스를 쓰고 밥을 먹는 가족들의 개인 정보 노출 위험을 담은 단편 영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현재 AI기술을 사용해 가족들의 감정은 시간으로 분석된다. 영화에서는 AI 생성 종업원들은 자신의 판매  전략을 상대방에 맞춰 최적화하고 손님들의 성향을 분석해 판매를 극대화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이에 증강현실 대중화로 인한 개인정보 악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증강현실의 몰입형 환경에서 AI가 개인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 환경보다 선택의 한계가 있는 몰입형 환경에서는 AI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애플의 비전 프로 등 MR디바이스는 세상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의 경험을 평면 스크린에서 확장시켜 보다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콘텐츠 시청 경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집과 사무실을 마법으로 공간으로 만들고 개발자들이 만들고 싶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가상현실과 MR헤드셋]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지난 2023년 6월 5일 공개한 MR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과거 VR헤드셋과는 개념이 전혀 다른 기기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기기라기 보다, 기존 PC를 대체하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을 향한 디바이스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통해  현실 라이프의 모든 생활을 가상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헤드셋 소개를 위한 30여 분의 데모에도 모든 시간이 가상공간에서 일을 하고 페이스타임을 통한 텔레커뮤니케이션, 홍채 인식을 통한 애플리케이션 작동 등에 설명이 집중됐다.

과거 애플이 디즈니 ‘만달로리언’과 애플 TV+의 ‘ Prehistoric Planet’의 수석 프로듀서  존 파브로(Jon Favreau)와 헤드셋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5일 프레젠테이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VR헤드셋을 통한 가상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선 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필수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었다.  애플 워치가 2015년 처음 공개됐을 때 시계에서 쓸 수 있는 3,000개 앱이 공개됐지만 정작 유용한 것이 없다는 비난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알다시피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나 기기는 정확한 용도가 필요하다. 물론 메타로선 아쉬운 결과겠지만  메타의 VR헤드셋이 2022년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이유도 상당수가 게임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나 기기는 정확한 용도가 필요하다. 물론 메타로선 아쉬운 결과겠지만  메타의 VR헤드셋이 2022년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이유도 상당수가 게임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헤드셋 점유율



또 애플 TV+와 디즈니+외 지원되는 다른 스트리밍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이거의 4분..스펙을 스토리로 바꾸다]

그러나 상황은 밥 아이거(Bob iger) 디즈니 CEO가 애플 행사장에 등장한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행사장의 모든 흐름도 바뀌었다. 애플 임원으로 가득찬 현장에 엔터테인먼트 거물의 등장은 강력한 충격을 줬다. WWDC에서 디즈니가 제공한 이런 시각적 효과는 거실을 뛰어다니는 AR 3D 버전 미키마우스를 상상하게 했다.

밥 아이거가 비전 프로와 함께 즐기는 디즈니+와 콘텐츠를 소개하자 사람들은 ‘VR헤드셋에서 즐기는 스트리밍 서비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밥 아이거의 등장만으로 VR 엔터테인먼트의 중요성에 대한 확실한 강조가 되는 순간인 셈이다.

아이거가 등장한 시간은 4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플의 연간 글로벌 개발자 컨퍼런스(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의 시선을 팀 쿡에서 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entertainment mogul)인 밥 아이거는 개발자들에게 이렇게 큰 환대를 받았다. 아이거는 가장 중요한 조연이었던 이유는 비전 프로가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아이거는 카메오였지만 역할은 주연 이상이었다. 비전 프로가 스트리밍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 이 경험이 비전 프로를 살릴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VR헤드셋의 방점이 스펙에서 스토리로 진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VR회의론자’들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다.

디즈니는 비전 프로가 엔터테인먼트 가상현실로 가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거 메시지는 혁신적이었다. 비전 프로를 통해 구현될 디즈니 스트리밍은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구독자들은 ‘비전 프로’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들을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데모 화면에서는 가상 공간에 떠있는 디즈니+ 앱과 이를 클릭해 보는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이 만달로리안 행성에 들어가서 콘텐츠를 보는 몰입형 경험은 압권이었다.

이에 콘텐츠 사업자들도 애플의 비전 프로가 매우 기다려지는 상황이 됐다.(뉴스와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아이맥스 영상을 모바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비전 프로의 스트리밍 비전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헤드셋 공개와 동시에 디즈니+를 쓸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기능이나 스펙, 콘텐츠는 오픈되지 않았다. 공간 컴퓨팅에서의 콘텐츠 시청은 여전히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공간 컴퓨팅에서 비디오와 오디오 콘텐츠가 어떻게 작동되고 오디언스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장 큰 관심사지만 현장 그림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디즈니는 마블 시리즈 ‘왓 이프(What if)’를 VR버전을 공개했지만, 소비자들이 버전 프로를 통해 가상현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아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역시, ‘블랙 미러(Black Mirror)’, ‘베어 그릴(Bear Grylls)’ 시청자들에게 결정권을 제공하는 인터랙티브 드라마, 영화를 공개하고 있지만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애플 비전 프로에서 작동되는 디즈니+는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보다 훨씬 더 강한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대중적 성공은 다른 문제다. 이전에도 비슷한 증강현실 시각적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효과를 약속했던 매직 리프(Magic leap)가 있었다. 실사와 가상 현실을 결합한 헤드셋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mdXJy_IdNw

그런데, 매직리프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결국 B2C에서 B2B마켓으로 전환했다.  매직리프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필요한 스토리가 없었던 것이다.

[스펙이 아닌 스토리를 강화하는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VR스포츠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코트에 직접 앉아있는 직접 경험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농구 콘텐츠도 공개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상업적으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2016년에도 NBA 위원 아담 실버(Adam Silver)가 홀로그램 기업과 체험형 경기 관람 플랫폼 구축을 논의했었다. 심지어 비전 프로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스키 고글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왜 선글라스를 쓰고 영화를 봐야 할까.’ 메타버스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은 팬데믹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라는 차가운 시선이 아직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장의 선택이다.  시장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다.

디즈니+의 비전 프로는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구글 글래스나 3D TV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메타는 2019년 가상현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페이스북 호라이즌(Horizon)을 처음 공개했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데 까지는 가지 못했다. 회사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까지 배수의 진을 치고 있지만 여전히 적자다. 메타의 고전은 가상현실을 상업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메타와 애플의 다른 점 ‘할리우드’]

메타는 애플 비전 프로가 나오기 하루 전, 자사의 보급형 MR헤드셋 퀘스트3(Quest3)를 공개했다. 500달러 보급형 모델이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메타 제품의 7배 가격인 만큼 퀘스트에 없는 스펙(Spec)이 즐비하다.

하지만, 메타에는 없고 애플에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밥 아이거(Bob Iger)의 지원이다. 디즈니가 애플과 손을 잡은 이상, 저커버그는 데이비드 자슬라브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CEO나 쉐릴 레드스톤 파라마운트 글로벌 CEO 등의 할리우드 거물과 협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도는 아이거와 비교되지 않는다. 밥 아이거는 애플의 오랜 우군이다. 아이거가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공개했을때도 디즈니는 애플과 자사의 영화와 TV콘텐츠를 스마트폰에 공급하는 첫 계약을 했다.

디즈니를 잡은 아이폰은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애플은 디즈니의 도움이 절실해보인다. 애플은 편당 1.99달러로 다운 받는 디지털 구독 모델을 도입했지만 결국 넷플릭스가 들어오면서 모든 시장은 스트리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다면 메타는 할리우드와 손을 잡을까? 메타 퀘스트 프로용 스트리밍 플랫폼(피콕)도 나왔지만 현재까지는 엔터가 완전한 중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저커버그 메타 창업주는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라는 VR헤드셋을 처음 내놨다. 그러나 이 기기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가상 소셜 미디어가 핵심이었다. 당시 버라이어티는 “오큘러스 리프트는 페이스북을 영화 비즈니스에 넣으려는 시도”라고 언급했다. 지난 6월 8일 직원 올핸즈미팅때도 저커버그는 ‘우리의 VR은 소셜 미디어’라며 “쇼파에 앉아 VR을 쓰고 혼자 앉아있는 애플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More importantly, our vision for the metaverse and presence is fundamentally social. It’s about people interacting in new ways and feeling closer in new ways. Our device is also about being active and doing things. By contrast, every demo that they showed was a person sitting on a couch by themself)

VR헤드셋은 장기적으로는 TV를 넘어 극장까지 위협하는 새로운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듯,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기술도 그렇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상 공간의 정의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갈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속도다. 이 속도를 견디면서 시장을 만들어갈 한국 콘텐츠 사업자들이 있는가. 적어도 뉴스에는 없다.

[애플의 AR 시대 환영]

애플의 비전 프로는 지난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회사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4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만 봐도 애플이 이 제품 성능 향상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면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애플 AI글라스가 만드는 증강현실 세계(AR)에서는 가상현실 콘텐츠가 실사와 교감하고 우리 주변 환경과 끊임 없이 어울릴 수 있다.

물리적 제한이 사라진, 디지털 콘텐츠는 보다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특히, 생성AI와 메타버스가 만날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콘텐츠가 현실에 재현될 수 있다. 이런 가상 현실도 개인 맞춤형 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다.

버라이어티는 “애플의 비전 프로는 콘텐츠를 책상과 벽의 모니터로부터 해방시키고 대신 우리를 둘러싼 가상 스크린, 심지어 장엄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거대한 스크린을 갖게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애플과 디즈니는 함께 이런 영화적 가능성을 가상 공간에 구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