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그레이트 리번들링 시대 개막]왜 스트리밍 번들인가?
지난 1년 동안 여러 소비자 설문 조사를 통해 케이블 번들의 경직성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한 개별 스트리밍 옵션 분야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20년 이후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급속히 확대된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케이블TV와 유료 방송의 선택 경직성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여러 설문 조사에서도 케이블 번들(Bundle, 채널 묶음 상품)에 대한 강한 반감이 드러난다.
원하는 채널을 구독하기 위해선 자신이 보지도 않는 채널에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은 스트리밍으로 옮겨갔다. 일명 코드 커팅(Cord Cutting)이다.
[고객들의 불만이 만들어 낸 코드 커팅]
2023년 2분기도 미국 유료 방송 시장에게는 좋지 않은 시기였다. 케이블TV 등 전통 유료 방송(MVPD)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실시간 채널을 보는 vMVPD도 가입자 확보 측면에서 어려운 날을 보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미국 전체 유료 방송 가입자는 사상 처음으로 5,000만 가구 이하로 떨어졌다.
컴캐스트(Comcast), 차터, 알티스USA, 디쉬, 버라이즌 등 주요 유료 방송 사업자는 지난 1년 사이 급격한 가입자 감소를 경험했다. 2023년 2분기 기준 무려 380만 명(가구)에 가까운 구독자가 떠났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절독 기울기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는 360만 명(2021년 대비)의 가입자 줄었는데 이제는 추세다.
2021년 2분기 이후 미국 주요 유료 방송 사업자는 760만 가구를 잃었다.
이에 반해 유료 방송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라이브TV스트리밍(라이브 케이블, 지상파 채널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유튜브TV는 가입자가 늘고 있다.
2022년 6월 기준 유튜브TV 구독자는 500만 명을 돌파해 미국 1위 IPTV사업자가 됐다.
월 이용요금이 72.99달러로 (아직은) 케이블TV에 비해 낮고 구글 ID와 연동돼 미 전역에서 별도 설치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일부 지역 케이블TV 사업자의 경우 유튜브TV와 번들 상품을 만들고 있다. 방송을 포기하고 인터넷 공급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분절된 스트리밍에 대한 반감, 높아지는 번들 요구]
하지만, 반감은 스트리밍으로 번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저렴하고 다양하다는 ‘스트리밍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많은 구독자들이 자신들의 매달 쓰는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료가 불확실하고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에도 돈을 내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뱅고 조사에 따르면 구독에 익숙한 어린 세대일 수록 자신이 구독에 매달 얼마를 쓰고 있지 모르는 비율이 높았다.
특히, 케이블TV를 떠나온 계기가 된 분절된 서비스는 불만의 원천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지나치게 분할되고 있는 콘텐츠 생태계가 문제다. 보고 싶은 콘텐츠를 찾기 위해 스트리밍을 헤매야하며 증가하는 구독 비용에 짜증이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다양성과 단순함을 동시에 갖춘 ‘구독 패키지(Bundle)’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케이블TV시대와 다른 점은 지금 소비자들의 욕구는 하나의 패키지를 이용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러 스트리밍을 한번(저렴하게)에 구독하고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스트리밍 번들에 대한 소비자 요구는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가을 액센추어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Accenture and Oxford Economics)가 10개국 스트리밍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0% 가까이가 ‘단일 플랫폼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탑재된 앱’을 원했다.
뱅코(Bango)가 실시한 미국인 대상 조사에서도 스트리밍 사용자의 80%가 모든 구독을 관리할 있는 하나의 싱글 플랫폼을 바랬다.
한 때 스트리밍 서비스는 케이블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포화되고 지나치게 분산된 서비스 마켓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번들 모델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비자들 더 단순하고 쉬운 선택을 원한다. 동시에 효능감이 높은 플랫폼도 바라고 있다. 덜 구독하고 더 적은 앱을 쓰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이면 소비자들이 몰릴 수 있다.
[번들 고객은 우량 가입자]
번들링은 두 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묶어 할인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번들링은 스트리밍 회사들에게도 장점과 단점을 준다. 단점은 매출 저하다. 할인율이 높을 수록 매출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스트리밍 번들은 알 라 카르테(개별 구독) 옵션에 비해 1인당 매출액(revenue per user)은 낮다. 묶어서 할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번들의 매력은 가치 제안이다. 묶음 상품이 같은 가격에 제공된다면 소비자들은 선택할 리 없다. 디즈니+의 경우에도
디즈니+와 훌루(Hulu)의 월 구독 가격이 각각 7.99(광고 포함)달러이지만 두 서비스를 함께 구독할 경우 9.99달러(월)이다. 두 개를 개별 구독하면 16달러지만 번들 상품을 구매하면 10달러로 떨어지는 셈이다.
디즈니는 월 6달러 손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그렇지 않다. 번들 구독의 상쇄 효과는 충성도다. 번들 고객은 충성도(Retention)가 높다.
2023년 6월 덴버 스트림TV쇼(Stream TV show)에서 키노트에 나선 파라마운트 스트리밍 최고 전략담당(streaming chief strategy officer)제프 슐츠(Jeff Shultz)는 번들 고객을 우량 구독자(superior subscriber)라고 지칭했다.
그는 “(번들 고객은) 수익 감소의 대가로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우량 가입자(superior subscriber)’”라며 “이탈률이 낮고 잔류율이 높은 몰입도 높은 고객들”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리밍 회사들은 구독자 이탈을 막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이탈율을 낮추는데는 번들이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안테나(Antenna)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디즈니 번들(Disney+, 훌루)의 이탈율(Churn)은 평균 2%였다. 미국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중 가장 낮은 수치로 넷플릭스의 경우 평균 3%였다. 파라마운트 글로벌 역시, 연말(2023년 12월) 본격 출시되면 ‘파라마운트+쇼타임’(번들) 서비스가 개별 서비스보다 이탈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신사 번들의 득과 실]
스트리밍 번들 모델 중 하나는 통신사나 집합 서비스를 통한 서비스다. 뱅고(Bango)가 100명이 넘는 통신사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통신 요금제와 스트리밍 서비스 번들 제공은 고객 확보 및 유지에 가장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선 좋지만, 그러나 사업자 입장에선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통신사 혹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집합 서비스(aggregation platforms)을 통해 판매하는 구독 서비스들은 자체 상쇄 효과가 있다.
수익의 일부나 고객 정보를 플랫폼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경우 프라임 비디오 채널(Prime Video Channels)을 통해 판매된 구독 서비스에 대해 30% 수수료를 징수한다. 또 타사 서비스와 공유하는 사용자 데이터를 선별 선택한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들에게는 고객 접점 확대와 일정 수준의 유통 매출 확보에서 번들 제공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2
021년 실적 발표에서 파라마운트 글로벌 밥 바키쉬(Bob Bakish)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유통 채널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아마존 등과 같은 도매 서비스도 포함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또 “플랫폼을 통한 도매 서비스 제공이 더 큰 고객과의 접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공정한 거래 관계를 가졌다고 가정할 때 이는 다른 고려 사항 중 일부를 상쇄한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통 계약만 제대로 이루진다면 통신사 요금제 번들이나 집합 서비스를 통한 스트리밍 런칭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번들은 여러 장단점이 있지만,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확산될 것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