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장 체인의 대표격인 AMC의 CEO 애덤 애런(Adam Aron)이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에게 45일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산업 전반에 걸쳐 재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2024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애덤 애런은 극장 산업의 회복 중임을 강조하면서도, 극장 독점 기간의 단축으로 영화 산업 전반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장 독점 기간 단축이 초래한 문제
팬데믹 이전 극장 독점 기간은 75~90일이 일반적이었으나, 팬데믹 이후 스튜디오들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프리미엄 VOD(PVOD) 시장을 확대하며 독점 기간을 대폭 단축했다. 대표적으로 유니버설(Universal)은 2020년 트롤: 월드 투어(Trolls World Tour)를 PVOD로 출시하면서 극장 체인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이후 17일 또는 31일 이후 PVOD 출시가 가능하도록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애런은 이와 같은 단축된 창구(Window) 전략이 극장 매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영화 산업의 수익성과 제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런은 "우리 업계의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보다 여전히 약 38% 감소한 상태이며, 이는 극장들의 EBITDA(상각전영업이익), 수익성,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전략따라, 따로 따로..스튜디오별 상영 기간
극장에 영화를 제공하는 제작 스튜디오들은 극장 독점 기간을 두고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디즈니(Disney)는 자사의 영화에 대해서 최소 100일의 극장 독점 기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워너브러더스(Warner Bros.)는 최근 공포 영화 컴패니언(Companion)을 단 3주(21일) 만에 PVOD로 출시하는 등 보다 유동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니버설 또한 일정 기간을 정해 놓지 않고 그때 그때 다른, 유연한 개봉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의 계약에 따라 4개월간 극장에서 상영했지만, 최근 애니메이션 더 와일드 로봇(The Wild Robot)은 개봉 18일 만에 PVOD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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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은 "극장 개봉 후 17일 혹은 31일은 너무 짧다"며 "일부 스튜디오와 대화를 나눈 결과, 45일 극장 창구가 다시 표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극장산업, 적자 탈출 가능할까?
AMC는 2024년 4분기 13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예상치를 상회했지만, 여전히 1억 3,560만 달러(약 1,8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티켓 판매 증가와 관객 1인당 소비 지출 상승으로 전년 대비 손실 규모가 대폭 줄어 긍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디즈니의 모아나 2, 유니버설의 위키드(Wicked) 등의 흥행으로, 관객당 평균 지출은 7.15달러(미국 내 8.21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AMC는 지난 2024년 한해 동안 부채를 3억 7,500만 달러 이상 줄였으며, 6억 3,0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만 2025년 1분기 박스오피스 실적이 부진한 상황이지만, 올 여름 릴로 & 스티치,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슈퍼맨 등 대작 개봉을 계기로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50~100개 극장에서 대형 포맷 'AMC XL' 스크린을 도입하면서 관객들에게 최상의 만족감과 몰입도를 제공하면서 극장으로 불러 모으면서 적자를 벗어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극장과 스트리밍, 공존 가능한가
AMC 네트웍스(Networks)는 케이블TV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 광고, FAST 채널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기본 케이블 사업을 유지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 AMC+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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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C+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처럼 대규모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서비스 하기 보다는, 기워킹데드(The Walking Dead)처럼 기존 IP를 활용한 스핀 오프 콘텐츠나 프랜차이즈 확장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FAST채널을 통해 AMC의 인기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면서 TV 광고 외에, 디지털 광고 시장도 확장하고 있다.
영화 산업은 극장 수익과 스트리밍 플랫폼 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스튜디오들의 전략 변화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OTT 플랫폼은 지속적인 구독자 증가가 요구되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스튜디오들은 극장 개봉 후 빠르게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면 극장 체인들은 보다 긴 독점 기간이 영화 전체 수익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아노라(Anora)의 감독 숀 베이커(Sean Baker)는 최근 DGA 시상식에서 "극장 독점 기간을 다시 90일로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AMC가 주장하는 45일 홀드백 기간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극장 산업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각 스튜디오가 처한 재정 상황과 OTT 사업 모델에 따라 이 논쟁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극장 산업은 팬데믹 전과 전혀 다른 산업 환경에 직면해 있다. 변화하는 소비자 시청 습관과 시장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면, 극장은 점차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한국 극장 관객 수는 2024년 1억 2천 만 명(추정)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억 2,660만 명의 절반 수준이다. 티켓 가격은 1만 5,000원으로 인상되었지만 관객 수는 줄어들고, 팝콘 같은 추가 소비도 감소하면서 극장 산업 전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상영되는 콘텐츠도 신통치 않다. 빅스크린(극장)으로 와야 할 대작 콘텐츠들은 넷플릭스나 디즈니+처럼 스몰 스크린(TV, 스트리밍 서비스)으로 옮겨 갔고, 해외에서는 흥행하고 있는 블록버스트 영화들도 한국에서는 예전만 못하다. 기다리다 보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더 이상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극장을 가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관람객들이 못찾고 있다.
이렇다 보니 투자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제작도 줄어 들고 있다. 제작이 줄어들면 영화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올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뚜렷한 해결 방안도 정책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영화관'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찾아오는 시대는 지났다. '극장 기반 콘텐츠 플랫폼'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배급 뿐만 아니라, 극장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라이브 공·e스포츠 등 '비영화 콘텐츠'로 확대하면서 극장 공간 활용도를 늘리는 등 다양한 수익 모델 개발과 생전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업계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