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6일 인터넷 테크 뉴스 기즈모도(Gizmodo) 엔터테인먼트 섹션에 새로운 바이라인이 등장했다.
이름은 바로 ‘기즈모도 봇(Gizmodo Bot)’ 기즈모도 봇은 스타워즈 영화와 TV시리즈에 대한 연대기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기즈모도 편집장은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기사는 기즈모도의 모회사인 G/O미디어(G/O Media)가 생성AI를 이용,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다시피 생성AI(Generative AI)는 주어진 명령에 따라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스스로 만드는 플랫폼이다.
기즈모도에 AI가 생성한 기사의 제목은 ‘스타워즈 영화와 TV쇼 연대기(A Chronological List of Star Wars Movies & TV Shows)’다. SF 전문 기자 기즈모의 부편집장 위트브룩은 빠르게 이 글을 봤다.
그러나 상당히 오류가 많았다. 스타워즈 TV시리즈 ‘Star Wars: The Clone Wars’ 등의 연도별 공개 순서도 모두 뒤죽박죽이었다. 또 2008년 영화 ‘스타워즈: 안도’와 같은 TV쇼는 아예 언급 조차하지 않았다.
'기즈모도 봇'이라는 바이라인을 제외하고는 AI가 썼다는 '명시적인 지적(explicit disclaimer)’도 없었다.
결국 위트 브룩은 기즈모 편집장 댄 애커만(Dan Ackerman)에 메일을 보내 18개 부분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AI 기사가 게재되자 기자들은 크게 분노했다.
기자들은 내부 슬랙 메시지로 AI를 이용한 뉴스 작성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또 회사의 명성이 훼손됐고 기자들에 대한 존중도 없어 이 글은 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제임스 위트브룩은 트윗에서 "오늘 보셨겠지만, io9에 AI가 생성한 기사가 등장했다”며 "저는 약 10분 전에 통보를 받았고, io9의 어느 누구도 그것의 편집이나 출판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AI 기사는 우리 모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독자들도 기만하는 것”이라며 “이런 기사를 내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기즈모의 스타워즈 기사사는 구글 바드(Bard)와 챗GPT로 쓰여졌다.
G/O 미디어 CEO 짐 스팬펠러(Jim Spanfeller)는 최근 편집장 메릴 브라운(Merrill Brown)과 부편집장 리아 골드맨(Lea Goldman)을 영입하면서 AI뉴스를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G/O미디어는 기즈모, 데드스핀(Deadspin) 등 7개 디지털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다. 2019년 출판계 원료 스팬펠러와 사모펀드 그레이트 힐은 공동으로 기즈모도 미디어 그룹과 유니온(The Onion)을 인수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AI 급속 확산…두려움도 급증]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업계에서 AI는 깊숙이 침투해있다. 메타버스, 스트리밍 등 테크놀로지가 콘텐츠 시장을 바꾸는 경우는 많았지만 생성AI는 과거 기술과는 다르다는 분위기가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술이 이야기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됐다’는 점이다.
기즈모도 사태에서 우리의 받은 결론은 AI는 창작자의 조력자를 넘어 스스로 창작자가 되고 있다.
권력 체인지에 따른 두려움도 많다.
버라이어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은 생성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노동자 (entertainment workers)의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을 것에 대해 매우 혹은 어느정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사는
유고브가 2023년 6월 27~28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 51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AI에 대한 업계 관계자 인지도는 일반인 보다 훨씬 높았다.
자신들을 안정성을 위협하는 적(AI)에 대한 인지도도 높았다. 조사 대상자의 87%가 챗GPT, 미드저니(Mid Journey)를 잘 알고 있었다. 또 전체의 3분의 2(65%)가 AI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두려움 급증]
생성AI에 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함께, 전문가 상당수는 지적 재산권 침해(IP)를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AI 확산으로 인한 저작권, 상표권(trademark),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 침해에 대한 두려움도 매우컸다.
일자리 감소, 사이버 보안, 개인 정보 보호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응답자의 69%는 사람의 목소리, 얼굴 등을 완벽히 복제할 수 있는 AI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AI의 사용과 창작물의 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중 절반 가량(43%)은 생성AI의 사용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창작 결과물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반해 AI사용으로 창작 품질이 개선될 이라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창작자와 갈등을 벌이는 AI]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침해하는 AI의 능력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작가협회(WGA), 감독협회(DGA), 배우 방송인 조합(SAG-AFTRA) 등 제작인 노조는 새로운 근로 계약에 생성AI에 대한 사용과 능력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미국 작가 노조(Writers Guild of America)
-지난 2023년 5월 이후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 작가 노조는 스튜디오와 AI 관련 입장도 다르다. 작가들은 스튜디오가 AI를 사용해 자신들의 작품을 수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 감독 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
미국 감독 조합(DGA)는 2023년 6월 23일 새로운 계약을 맺고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새 규정은 AI에 대한 일부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AI는 사람이 아니며 감독의 통상적인 역할을 맡을 수 없다. 또 감독의 자문 없이 스튜디오는 AI를 그대로 감독으로 사용할 수 없다.
미국 배우 방송인 조합(SAG-AFTRA)
미국 배우 방송인 조합과 제작자 연맹(AMPTP)은 2023년 7월 12일까지였던 계약 마감을 연장했다. 협상 기간을 더 길게 두기 위해서다. 2023년 6월 5일 조합 작가들은 투표를 했는데 만약, 합의에 실패한다면, 파업을 승인한다는 계획에 98%가 찬성했다.
2023년 6월 27일 작가들은 조합 간부들에게 내부 편지를 보냈다. A급 스타를 포함해 1,000명이 넘는 배우들이 서명을 했는데 배우들의 유사성(actor likenesses)을 보호하고 그들의 과거 어떤 작품에 AI 트레이닝이 사용될 때 1배우들에게 보상을 해달라(compensated when 는 내용이 담겼다.
때문에 일부 할리우드 배우들은 매니지먼트 계약 시 자신을 이용한 AI의 사용과 개발 범위 등을 명확히하는 규정을 넣고 있다. 동시에 연예 기획사 CAA는 AI툴 및 디지털 휴먼 제작회사 메타 피직(Metaphysic)과 소속 연예인들의 AI 콘텐츠 제작 계약도 맺었다.
[AI와 창작자 갈등 더 깊어질 듯]
기술 변화 속도를 볼 때, AI 사용은 스튜디오와 사용자, 노조 및 제작 단체 간 큰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생성AI의 능력과 레벨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는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는 2~3년 내 인간 작업의 상당수를 대체할 것은 분명하다. 이미 AI는 영상 편집 등 제작의 많은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 수준에 왔다.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될까.
AI기술 도입으로 2~3년 내 인간과 대응한 수준으로 발전할 영역을 뽑아 달라는 질문에 미국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두 명 중 한 명은 영화, TV 음향 효과, 게임 프로그래밍 코딩(54%), 영화, TV 또는 게임 스토리 보드 개발(52%) 등의 영역은 조만간 인간을 뛰어넘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에 반해 스토리나 노래 가사를 쓰거나(33%), 디지털 합성 배우(33%)을 출연시키는 것은 아직은 어색한 작업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물론 신세시아(Synthesia), 런웨이(Runway)와 같은 AI 디지털 휴먼 제작 솔루션의 발전 속도가 높아 미래에는 또 다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AI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다. 발전 속도에 따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더 커지고 있다. 교육 데이터의 출처, 생성 자료의 저작권 문제는 현재 뜨거운 쟁점이다. 현재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는 AI작품은 거의 없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AI 사용 빈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조사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 10명 중 3명(30%)는 이미 AI를 쓰고 있거나 향후 쓸 계획(17%)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이 비율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AI 사용 빈도가 늘어나면 날 수록, 창작자와의 갈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법적 보호 이슈 등은 더 강력하게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각 영역 별 노조와 사용자 간 갈등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AI가 창작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 사례를 주로 소개했지만 한국도 똑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AI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 AI가 참조하는 교육 데이터의 저작권 침해, AI의 발전이 가져다 주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일자리 감소 혹은 창출, AI휴먼, AI음악 등은 대표적으로 우리를 괴롭힐 요소들이다.
하지만 노조 단체의 요구가 분명한 미국과는 달리 아직 한국은 적어도 창작자의 경우 ‘AI와 싸울 힘과 기술’이 부족해 보인다.
힘을 키우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장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우리를 죽일 지도 모르는 AI의 발전을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